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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 지음｜허승철 옮김｜미행｜364쪽｜2만2000원

'분노의 포도'를 쓴 소설가 존 스타인벡(1902~1968)이 1947년 소련 여행을 구상했다. 그 시점이 흥미롭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으로 치닫던 무렵이었다. 작가는 여행의 동반자로 대번에 로버트 카파(1913~1954)를 떠올렸다. 스페인 내전 당시 쓰러지는 병사 모습을 촬영했고, 훗날 베트남·프랑스 전쟁 당시 지뢰를 밟고 숨을 거둔 전설적 종군 사진기자다.

환상의 단짝이었지만, 정작 출발 전부터 스타인벡은 기대보다는 근심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이 기록이 교조적인 좌파와 아둔한 우파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좌파는 반(反)러시아적이라고 할 것이고, 우파는 친러시아적이라고 비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련의 관료주의와 언어적 장벽, 체제와 이념 갈등 속에서도 모스크바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 2차 대전의 격전지였던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등을 둘러본 여행기다.

"부정적이거나 호의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기로 했다"는 작가의 다짐처럼, 여행기는 사실적 묘사와 서술에 충실한 편이다. 하지만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 조지아를 방문하는 후반에 이르면 결국 회의적 시선을 숨기지 못한다. "스탈린이 말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도 그들 모두에게 진리였다."

이런 솔직한 의문은 사후 스탈린 격하 운동을 예견하는 듯한 작가적 통찰력으로 이어진다. "스탈린이 살면서 이런 권력을 누린다면,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이런 구절을 읽고 있으면 한국 작가들의 북한 방문기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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