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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기 금리 역전, 엔화 급등, 유가 급락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 폭이 40여 년 만에 최대로 벌어졌다. 안전 자산으로 간주되는 엔화의 가치가 갑자기 치솟았다. 공급을 줄인다는데도 국제 유가는 추락하고 있다. 동시에 나타난 이들 3가지 지표가 가리키는 곳은 경기 침체다. 얼마나 급격하게 닥칠지, 침체의 골이 얼마나 깊을지에 대해서는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침체 공포는 커지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를 강타한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벌이고 있는 금리 인상 레이스는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침체를 알리는 신호들

7일(현지 시각) 뉴욕 채권시장에서 2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전 거래일보다 0.1%포인트 낮은 연 4.26%,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도 비슷한 폭 떨어진 연 3.42%를 기록했다. 만기가 짧은 2년물 국채 금리가 10년물보다 0.84%포인트나 높다. 두 채권 금리가 이렇게 큰 폭으로 역전된 것은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22%까지 올렸던 지난 1981년 이후 최대 폭이다.

예금처럼 채권도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게 일반적이다. 불확실한 미래까지 돈을 오래 빌려주려면 더 높은 금리를 치르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올여름까지만 해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그러나 연준의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씩 인상)으로 물가 급등세가 멈칫하는 조짐이 보이면서 '어둠의 자식들'로 불리는 채권 투자자들이 침체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조만간 경기가 나빠질 것이란 인식 때문에 투자자들이 단기 채권보다 안정성이 높은 장기 채권에 대거 몰리면서 10년 만기채 가격이 더 빠른 속도로 상승(금리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월가 '채권왕'으로 불리는 더블라인캐피털 제프리 건들락 CEO는 7일 미국 경제방송 CNBC에서 "주택 시장 가격이 지난 1년간 얼마나 급격하게 역전됐는지(하락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라며 "인플레이션이 분명히 내려오고 있어, 연준이 조만간 금리 인상을 번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전 자산의 대명사인 일본 엔화 가치도 뛰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하순 '1달러=150엔' 선이 32년 만에 무너지는 엔화 초약세 현상이 벌어졌는데, 최근 엔화를 찾는 투자자들이 밀려들며 7일에는 달러당 136엔 선까지 회복했다. 한 달 반 만에 9%가량 가치가 뛴 것이다.

경기 바로미터인 국제 유가는 최근 1년래 최저점까지 떨어졌다. 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3.02%(2.24달러) 급락한 배럴당 72.0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작년 12월 21일 이후 최저치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때 120달러대를 돌파했던 것에 비해 42% 급락한 것이다.

◇경기 연착륙 가능할까

이제 시장의 관심은 어떤 형태의 침체가 오느냐에 모이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예고한 '허리케인'급 경착륙이 될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말하는 연착륙이 될지 전문가들 의견도 갈린다. 특히 헷갈리게 하는 건 최근 엇갈리는 미국 고용시장 지표다.

최근 아마존과 메타 등 빅테크들의 대규모 감원을 시작으로 펩시, 워너브러더스 등 주요 유통·미디어 기업들도 감원에 착수하고 있는데, 정작 전체 일자리 통계는 여전히 양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노동시장이 1억50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어서, 최근 일부 기업들의 감원은 통계에서 희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늘고 비어있는 일자리 수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고용지표도 곧 꺾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제민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긴축 누적에 따른 충격이 실물경제에 본격 영향을 미칠 내년 상반기에 노동시장 균열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한 중국 경제의 향방도 연착륙과 경착륙 갈림길에 선 세계 경제의 중요한 변수다. 다만 중국 경제 재가동이 에너지 가격을 밀어올리고, 그 결과 미국 물가도 자극해 연준이 긴축 기조를 중단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픽] 글로벌 경기 침체 예고하는 세 가지 신호 기고자 :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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