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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급망 확보 속도전
韓, 반도체법 4개월 공전
미 정부와 기업들의 응원에 화답하듯, 이날 TSMC는 현지 공장 투자 규모를 종전 120억달러의 3배가 넘는 총 400억달러(약 52조9000억원)로 늘려 애리조나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 두 곳을 짓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애리조나에서 만들어진 칩을 애플이 쓰게 되면 이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는 해외에서 첨단 칩을 구매했지만 이제 이런 공급망을 안방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자급망이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527억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내세워 현지 공장 건설을 유도했고, TSMC를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화답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반도체 업계 지원을 위한 '반도체 특별법'이 4개월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전을 벌이며 반도체 공장 유치에 나선 가운데 한국만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국 반도체 공급망 확보한 미국
TSMC가 투자하는 400억달러는 애리조나주 내 최대 외국인 투자이자, 미국 전체로 봐도 손꼽히는 대규모 투자다. TSMC는 1공장은 2024년부터 가동해 4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고, 2026년 가동을 시작하는 2공장에서는 3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두 공장이 연간 60만장의 웨이퍼를 제조해 100억달러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며 "미국 내 4500개의 직접 고용 일자리와 1만3000개의 간접 고용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미국 업체들은 'TSMC가 미국 내에서 생산한 칩을 쓰겠다'고 선언하며 TSMC를 응원하고 나섰다. 팀 쿡 애플 CEO는 "이제 (애플 제품에 들어가는) 칩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됐다"고 했고, 리사 수 AMD CEO도 "AMD가 TSMC 애리조나 공장의 큰 고객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미국은 천문학적 보조금 외에 향후 4년간 25%의 세액 공제까지 내걸고 전 세계 반도체 업체, 특히 고객 주문을 받아 첨단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업체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애플·AMD·엔비디아·퀄컴이 자체 설계한 칩을 파운드리 업체를 통해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원책에 힘입어 TSMC뿐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도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향후 20년간 텍사스에 최대 1921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11곳 짓는 계획도 제출했다. 미국 인텔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며 미 오하이오와 애리조나에 총 50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한국은 4개월째 반도체법도 통과 못 시켜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반도체 공장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방한한 독일 대통령과 스페인 총리는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아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유럽 내 반도체 공장에 430억유로(약 59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유럽 반도체법'에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경쟁국보다 불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장 인허가 간소화, 인력 양성, 세액 공제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반도체 특별법이 마련됐지만 국회에서 4개월째 표류 중이다. "대기업 특혜다" "세수가 줄어든다"는 야당과 일부 정부 부처의 반대로 발목이 잡혀있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이 갈수록 경제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전 세계가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무섭게 뛰고 있는데,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만 느긋하게 정쟁에 빠져있는 현 상황이 아찔하다"고 했다.
[그래픽]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 짓는 반도체 업체들 기고자 :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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