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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숙제 안긴 벤투호의 월드컵

한국은 대회 개막을 전후해 여러 악재를 만났다. 손흥민은 얼굴 수술을 받았다.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뛰느라 정상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벤투 감독 체제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지난 두 시즌 연속 프랑스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했던 황의조(올림피아코스)는 이번 시즌 그리스 리그로 옮기고 나서 무득점으로 부진의 늪에 빠져 있었다. 손흥민, 황의조와 함께 '유럽파 공격 3인방'이었던 황희찬(울버햄프턴)도 햄스트링 부상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느렸다. 이 바람에 한국은 우루과이와 벌인 1차전에선 초반부터 점유율에서 우위를 보였으면서도 공격만큼은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 두 팀 모두 유효슈팅이 하나도 없었다.

◇벤투의 '공격 플랜 B'는 성공적

벤투 감독은 가나와의 2차전에 조규성(전북 현대)을 스트라이커로 선발 기용했다. 우루과이전에 교체 멤버로 월드컵 데뷔를 했던 조규성은 가나전에서 두 골을 넣어 한국 선수로는 역대 월드컵 최초로 한 경기 '멀티 골'의 주인공이 됐다. 가나전에서 전반에만 0-2로 끌려가자 벤투 감독이 후반에 이강인(마요르카)을 투입한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황인범(올림피아코스)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드진은 한국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재성(마인츠), 나상호(FC 서울), 이강인이 기대 이상 활약을 펼쳤다. 가나전에서 2대3으로 결국 패하면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희박해지는 듯했다. 벤투 감독은 3차전에 이강인을 선발로 내세우고, 황희찬을 후반 교체로 쓰며 승부수를 던졌다. 결국 시작 5분 만에 먼저 골을 뺏기고도 2대1로 역전 드라마를 썼다. 특히 1-1이던 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의 70m 질주에 이은 패스와 황희찬의 결승골은 이번 대회 최고의 순간이었다.

◇'열심히 뛰는 수비'의 한계도

월드컵 전까지 벤투 감독 체제의 한국은 53경기(34승 12무 7패)를 치렀다. 이 기간에 우리보다 객관적인 전력이 강한 유럽팀과는 평가전을 치러 본 적이 없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유럽축구연맹이 네이션스리그라는 국가대항전을 신설해 유럽팀끼리 경기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한국이 적당한 평가전 파트너를 찾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수비는 진정한 담금질을 할 기회가 적었다. 2002 월드컵 전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한국은 체코와 프랑스에 0대5로 대패하면서 각성의 기회로 삼았다.

한국 대표팀이 이번에 들고나온 전술의 방향성은 옳았다. 벤투 감독은 상대 팀에 따라 공 점유율을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힘썼다. 공격수들도 압박 수비에 가담하는 등 '원 팀'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체력 소모는 컸다. 김민재(나폴리) 등 부상 선수도 나왔다. 조별리그 단계에서 힘겹게 버텨냈던 한국 수비는 16강전에서 브라질의 압도적인 공격력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브라질은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 개인기와 조직력, 골 결정력 등을 조화시키며 한바탕 '축구 쇼'를 즐겼다. 한국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평가전(1대5 패)처럼 당했다. 체력까지 바닥 난 상황이라 플레이가 더 위축됐다.

한국이 다음 월드컵에서 16강, 나아가 8강을 노리려면 일본처럼 해외 리그에서 뛰며 선진 축구를 몸에 익힌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더 배출할 필요가 있다. 주전과 벤치 멤버의 수준 차이가 거의 없는 스쿼드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은 선수단이 지닌 '재능의 총합'이 커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벤투호의 카타르 월드컵은 희망 외에 해묵은 숙제도 재확인한 대회였다.

[그래픽] 태극전사들의 팀 내 각종 기록 1위 기고자 : 도하=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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