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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힘줄에 존재하는 위치감각이
정상적인 신호를 보내야만
퇴화와 과도한 염증 방지 가능

지난여름, 서울 안강병원에 중동 VVIP가 방문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군 병원 만성통증센터를 운영할 때, 수행비서 여러 명과 전담 물리치료사를 대동했던 왕족(王族)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 당시 허리 협착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무릎과 발목 통증으로 내원(來院)했다. 해외 입국자 자가 격리 의무가 해제되자마자 급히 서울을 찾은 것이다.

지팡이에 의존해 진료실로 들어오는 모습에, 환자의 통증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무릎이 많이 퇴화한 상태였다. 면밀한 진찰 끝에 먼저 무릎 관절을 움직이는 근육·신경 위주로 1차 치료하고, 그 후 연결된 사타구니·종아리까지 한꺼번에 2차 치료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환자는 "왜 이렇게 부위가 많은지, 관절염이면 무릎 관절만 치료하면 되는 것 아닌지" 반문했다. 논문 등 관련 자료를 보여주며, 무릎 관절염은 위치 감각에 이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주위 근육까지 자극해야 치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본국 의사들에게 소견을 물었고, "확신하기 힘들다"와 "일리가 있다"는 답변을 동시에 받았다. 고민 끝에 결국 필자를 믿고 시술에 들어갔다. 두세 달이 지났을까. 환자가 필자와 물리치료사를 불러 세웠다. "이것 봐요. 선생!" 그녀는 평생 함께할 것이라 예상했던 지팡이를 놓은 채 몇 미터를 제법 멀쩡하게 걸었다.

예를 든 중동 VVIP뿐만 아니다. 나이 들어 무릎 성한 사람 찾는 것이 더 어렵다. 걷거나 서는 것이 불편하다고 마냥 누워 있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누워서 무릎 각도를 살짝만 바꾸려 해도 '끙'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고통이다.

무릎에는 연골이 있다. 이 연골은 무릎을 움직일 때 충격을 흡수해주고 뼈 간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연골이 닳거나 터지면 무릎 관절의 뼈들이 충돌하거나 관절을 감싸는 막의 압력이 높아져 통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연골 자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연골이 흡수 못 하는 충격들이 주위에 전해져 염증과 통증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픈 무릎'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연골보다 좀 더 근원적인 위치 수용체, 즉 '위치 감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위치 감각은 자세를 안정화하고 신체 움직임을 조정하는 데 필수적인 감각이다. 근육·힘줄·관절 안에 존재하는데, 그중 근육에 가장 많다. ▲노화 ▲잦은 부상 ▲수술 등으로 위치 감각은 현저히 떨어진다. 다리를 움직이는 근육의 위치 감각이 잘못돼 움직임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관절에 손상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무릎이 아프다고 관절만 치료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과 신경이 비정상이라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위치 감각이 정상적인 신호를 보내야만 퇴화와 과도한 염증을 방지할 수 있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이유는 '아파서'다. 그런데 통증이 나타난다는 것은 여러 변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만약 위치 감각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관절에 염증이 생기면 붓고 아프지만, 결국 염증으로 손상된 부분이 회복된다. 만일 이 과정을 스테로이드 등 항염 주사로 멈춘다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재생(再生)도 요원해진다. 신경과 염증을 과하게 억제하는 여러 약물은 손상된 부위의 복구를 지연시키고 오히려 관절을 퇴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나아가 위치 감각까지 차단하게 된다. 다쳐서 아픈 것인데 다친 부위는 치료 안 하고, 아픈 것만 없애는 꼴이다. 그사이 상처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환자들이 병원에서 가장 많이 받는 치료는 주사를 맞는 것이다. 잠시 좀 괜찮다가 또다시 증상이 재발하곤 한다.

더 나아가 환자들은 관절경 수술부터 인공관절 수술까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관절경 수술은 관절 내에 내시경을 넣어서 염증 부위를 표면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인공관절 수술은 연골이 닳은 부위를 깎아내 인공연골로 대체하는 수술이다.

실제 필자에게 오는 환자 중 대다수는 주사를 이미 많이 맞아 봤거나,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선뜻 응하기 두렵다는 사람들이다. 즉 기존 치료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치료 계획에 확신이 서지 않는 환자들이다.

물론 환자에 따라 수술을 꼭 시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수술만이 가진 장점도 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으며, 단점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퇴행성 관절염과 연골 손상에 관절경 수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여러 논문에서 '관절경 수술(시술)은 퇴행성 무릎 질환 환자들에게 장기적인 이익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간한 '2021년 의료기술재평가보고서'에 따르면, 골관절염 중증도가 낮고 무릎 잠김 증상이 없는 무릎 골관절염 환자에게 반월판(무릎 위아래 관절 사이에 있는 반달 모양의 연골) 연골절제술을 시행한 경우, 보존적 치료에 비해 '단기적' 통증 감소 효과가 있으나 ▲무릎 기능 ▲신체 활동 ▲전반적인 건강 상태 ▲관절염 중증도 변화에 대한 단기 및 장기 효과 ▲장기적 통증 완화 효과에는 차이가 없다는 평가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또한, 반월판 연골절제술 받은 경우 10년 내 무릎 인공관절 수술 비율이 25% 정도 높았다.

다시 말해, 일시적인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좋은 경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수술 과정에서 무릎 관절을 지나다니는 무수한 신경과 위치 수용체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크고, 수술 이후 여러 가지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다. 자칫 몸에 해를 끼칠 가능성도 있는 수술을 시도한다는 것이 내 소중한 몸에 미안하지 않은가.

다시 쌩쌩한 무릎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 없이 온 환자들을 진료해 보면, 위치 감각이 저하된 경우가 많다. 대부분 쉽고 빠르게 호전된다. MRI 촬영과 손으로 만지고 꼬집어서 위치 감각이 저하된 근육 부위를 확인하고, 근육·힘줄·관절의 위치 감각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바늘을 사용하는 치료법을 적용한다. 단 한 번만 치료해도 10명 중 9명은 50% 이상 증상이 완화된다. 하지만 병이 오래된 경우 치료가 길어질 수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위치 감각을 살리려는 의학계의 노력은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외국에서도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을 통한 위치 감각 훈련이 대중화되고 있다. 이 방법도 위치 감각을 잃어버린 근육이나 힘줄에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일 수 없다. 기고자 : 안강 안강병원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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