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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경력 10년을 훌쩍 넘다보니 음식 만드는 것은 이제 웬만큼 익숙하다. 전기밥솥 없이 그냥 냄비에 밥도 잘하고, 잔칫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끼니마다 식탁에 올리는 국과 반찬 등은 레시피 없어도 수월하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감히 손도 못 대는 것이 있으니 바로 김치다.

깍두기나 파김치처럼 무나 쪽파로 간단히 만드는 김치는 가끔 시도해서 맛이 괜찮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묘한 맛이 되어 냉장고에 묵히다 버리기 일쑤다. 다른 음식들은 레시피를 보고 만들면 웬만큼은 비슷하게 맛과 모양을 흉내 낼 수 있는데 김치는, 나아가 김장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일단 김장의 핵심은 양질의 재료 수급이다. 통상 김장철은 11월 말부터 12월 초이지만, 어머니들의 김장 준비는 늦여름에 시작된다. 빛깔 고운 태양초 고춧가루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온갖 인맥으로 좋은 재료를 수소문한다. 이즈음엔 사찰, 교회, 성당도 종교가 보증하는 신성한 직거래 장터가 되고, 심지어 동네 미용실도 알음알음 농산물 판매처가 된다. 가족들과 지인들 먹을 정도로 조금만 정성스레 지은 귀한 농산물이 최상의 재료로 꼽히다 보니 판매 경로가 은밀할수록 그렇게 수급된 고춧가루와 마늘, 젓갈에 대한 신뢰는 더욱 커진다.

김치 담글 재료만 갖추었다고 김장 준비가 끝난 게 아니다. 보쌈김치와 함께 먹을 수육용 고기도 따끈하게 삶아내야 하고, 빠른 시간 안에 김치 버무리고 담아 보관하려면 일꾼들 허기지지 않게 틈틈이 끼니와 새참도 야무지게 챙겨야 한다.

완벽하게 계량된 레시피로도 김치 맛을 제대로 못 낸 건 가족들 먹이기 위해 오랜 시간 마음 쓰고 공들인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부족해서였음을 이제야 안다. 늦여름부터 차곡차곡 준비된 정성이 칼칼하고 시원한 김치로 익어간다. "톡톡" "보글보글" 집집마다 겨울의 행복도 익어간다. 기고자 :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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