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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예술만 하는 예술가는 키우지 않는다"

    어수웅 문화부장

    발행일 : 2022.11.25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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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연주로는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던 한국 청년이 있다. 1986년의 미국 뉴욕 줄리아드. 그는 내친김에 박사 학위까지 도전했다. 줄리아드의 젊은 총장은 패기만만한 한국 청년에게 면접 시험을 추가하겠다고 선언했다. 명색이 박사 학위인데 실기만으로 뽑을 수는 없다면서. 첫 질문은 편안했다. "요즘 무슨 곡을 치고 있나." "베토벤의 협주곡 5번 '황제'입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오, 좋아. 그렇다면 베토벤이 '황제'를 작곡할 때 어떤 사상의 영향을 받았는지 말해 줄 수 있겠나." 홍안의 청년은 얼굴이 더 붉어졌다.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 연주만 잘하면 최고라고 오판했던 청년은 고개를 숙였고, 이후 그는 피아노뿐 아니라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까지 섭렵한다. 인문학을 동반한 피아니스트. 줄리아드는 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스승은 은퇴했고, 제자는 대학 총장이 됐다. 각각 32년간 장기 집권하며 줄리아드를 세계 최고 신전으로 이끈 조셉 폴리시(74)와 '연주하는 대학 총장'이라는 별칭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60) 총장이다. 올해 개교 30주년인 한예종의 숙원은 대학원 설치 및 석·박사 학위 수여. 임윤찬을 비롯해 전 세계 클래식 콩쿠르를 휩쓸고 있는 이 학교 출신들의 놀라운 성과를 떠올린다면, 아직 이 학교에 그럴 자격과 권리가 없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법령상 한예종은 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훌륭한 커리큘럼과 최고 교수진을 갖추고도, 30년 전 고등교육법상 '각종 학교'로 시작했기 때문에 대학원 설립도 석·박사 학위 수여도 불가능하다.

    창작하는 예술가에게 과연 학위가 필요하냐는 근본적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예술은 개념이고 이상이지만, 예술가는 인간이고 현실이니까. 하지만 전제가 있다. 인문학을 갖춘 예술가. 이 대목에서 줄리아드의 폴리시 총장으로 돌아온다. 1984년 그가 취임했을 때만 해도, 줄리아드는 아직 세계 최고가 아니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학생들의 커리큘럼에 인문학을 도입했고,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을 신설했으며, 학생들에게는 '연주 기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했다. 예술만 하는 예술가는 기르지 않겠다, 예술이 전부가 아닌 예술가가 교육의 목표였던 것이다.

    김대진 총장의 한예종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 학생들은 혹시 연주 기계가 아닐까 품었던 의심을 날려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역대 최연소인 18세로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단테를 인용했을 때다. 리스트의 피아노 연작 중 '단테 소나타'를 이해하고 싶어서, 국내에 출간된 '신곡'을 모두 찾아 읽었다는 청년. 또 있다. 한예종 기악과 4학년으로 지난해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박재홍. 그는 '황량함'이라는 뉘앙스를 피아노로 표현하기 위해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반복해 읽었다고 한다. 다양한 예술과 학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해석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연주자. 그런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기계 학습만을 반복하는 AI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예종의 대학원 설치에 대한 다른 대학들의 근심을 알고 있다. 실기 인재 양성을 내세운 학교가 왜 학술과 이론을 연구하는 석·박사과정을 하려느냐는 비판도 있고, 한예종 독점이 더 심해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야를 확장해야 할 때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친 노벨 문학상 작가 토니 모리슨(1931~2019)의 말을 기억한다. 창작가를 만난 적도 없는 학생들이 예술 분야 학위를 받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창작과 실기 위주의 학생들이 왜 학위가 필요하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론과 학술 중심의 예술 대학은 왜 창작을 등한시하느냐고 반문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 더. 나는 예술과 예술 교육 분야에서도 우리가 선진국에 들어설 수 있고, 일부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예종의 뛰어난 교수진과 학생, 그리고 K컬처의 역동성에 반해 유학 오려던 외국 학생들이 학위 인증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해외에서 유학 오고 싶어 하는 학교'는 허망한 레토릭이 아니다. 좁은 땅의 독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전 세계에서 유학 오고 싶어 하는 한국 예술대학의 순위를 두고 서로 겨룰 때가 아니겠는가.
    기고자 : 어수웅 문화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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