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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면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발행일 : 2022.11.25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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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세월호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신속하게, 이렇게 대규모로 정권 퇴진 집회가 결성되어 주말 도심을 메우는 것이. 짐작건대 지난 대선 결과에 불만이 있던 사람들은 촛불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었던, 그 숨가쁘고 가슴 벅찬 기억을 소환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정권 퇴진의 길을 처음으로 터 준 것은 세월호 사건 아닌가. 오죽했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죽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까지 했을까. 그래서 이태원에서 사고가 터지자,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모든 이벤트(?)가 그렇듯, 처음에는 조직과 실행에 시간이 걸리지만, 두 번째는 훨씬 수월하다.

    사고 하루도 안 지나 MBC PD수첩은 "이태원 사고, 당국 문제점 제보를 기다린다"는 놀라운 취재정신을 발휘했고, 신생 인터넷 매체는 어디서 찾았는지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수능 전후 주말에 교복 차림의 중고등학생이 '전국중고등학생대표자학생회협의회'라는 거창한 조직의 일원으로 정권 퇴진 집회에 참여했다. 대학교에는 11월 4일 자로 '윤석열퇴진대학생운동본부 서울지역본부'명의로 작성된 대자보가 붙었다. "우리 청년 대학생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비상시국임을 선포"한다는 대자보는 "국민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거듭 외치고 있었다. 그 긴 문장을, 사고 닷새 만에 써서 전국에 배포하는, 대단한 기동력이다. 좌파 성향의 인터넷 방송은 사고 관련 각종 행사를 중계하며 모금도 하고 연대감을 확인한다. 언론과, 학교와, 시민단체와, 인터넷 매체와, 노동자 단체가 대목을 맞은 장터처럼 생기로 가득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회에 지난주 민주당 의원 6명이 단상에 올라 대놓고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치자, 여당에서는 '레드라인을 넘은, 헌정 질서를 흔드는, 대선 불복 행위'라는 내용의 비난 성명을 냈다. 그러나 사실 이태원 참사가 있건 없건, 정권 퇴진은 야당의 단골 테마였다. 백낙청 교수는 한 달여 전 오마이TV에 출연해 "(무능한) 윤석열에 대해서는 탄핵 요구보다 퇴진 권고가 합리적"이라는 발언을 했다. 대선 불복 정도가 아니라, 투표로 당선된 지도자를 향한 악담에 가깝다.

    때마침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그들의 '정권 퇴진론'에 본격 시동이 걸렸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태원은 세월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부가 책임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피해자 보상과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권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너무 간단한 논리를 이번 이태원 참사를 정권 퇴진론의 재료로 마술처럼 바꾸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진짜 슬픔에 잠기면 그런 문장이나 행동력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슬프고 안타까운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로 자연스럽지 않다. 대학생의 대자보에는 또래 학생들이 겪은 사고에 대한 인간적인 아픔 대신 현 정권에 대한 증오만 가득하다. 대자보는 "윤석열은 참사가 발생한 골목을 찾아가 '이곳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는 거지?'라는 막말을 내뱉었다"고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애도 기간을 틈타 전쟁 훈련을 일삼으며 전쟁을 국민의 목전까지 들이미는 윤석열" "기어코 욱일기를 내건 일본의 항공모함을 독도 인근으로 끌어들였다"는 대목에서는 이게 북한에서 쓴 성명서인가 의심이 될 정도이다. 수능 전후의 중고생들이 광화문 거리 시위에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앳된 얼굴의 그들이 후원 계좌가 적힌 배너 옆에서 시민의 모금을 기다리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연스럽지 않으니 감동도 없다, 핼러윈 사고를 안보 이슈와 엮은 건 속 보이는 패착이다.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그 주장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올 때 설득력을 지닌다. 정권을 바꾼다고 모든 안전 사고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사고를 정치화해서는 시스템의 개선점을 찾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개선에 쓰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세월호는 가르쳐주었다.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보다 정권이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 허점을 메우는 데 행정력을 기울이도록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

    정권 퇴진론의 또 다른 문제는 민주사회 선거라는 룰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데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룰이 있다. '줄을 서라' '쓰레기는 휴지통에' 같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투표로 당선된 사람을 지도자로 인정하는 민주주의 룰까지 다양하다. 신호등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길거리가 무법천지가 되는 것처럼, 민주 사회 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다.

    '룰 브레이커'들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규칙을 깨는 특징이 있다. 법을 어겨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이 많은 특징이 있다. 또 자기는 룰을 깨면서도 남이 깨면 엄청 분노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규칙을 위반하는 데 수반되는 인지적 불편함을 이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룰을 깨본 경험이 최근일수록 어렵지 않게 룰을 무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아마 세월호와 탄핵의 기억이 생생한 상태여서 갓 출범한 정권에 '퇴진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나보다.

    투표로 당선된 후보가 맘에 들지 않아도 결과를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면 지구상에 온전한 정부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다.
    기고자 :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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