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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미식계의 팜므파탈'이랄 만하다. 죽음으로 몰고 갈 줄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 매력을 지닌 여성을 뜻하는 팜므파탈처럼, 자칫 잘못 먹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먹는 별미가 복어이니 말이다.

복어는 알·간·혈액·내장·피부에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맹독을 품고 있다. 잘못 먹으면 즉시 입술과 혀가 마비된다. 두통, 복통, 구토 등 증상이 빠르면 20분 뒤부터 나타나다가 1시간 반에서 늦어도 6시간 뒤면 사망한다. 테트로도톡신은 양식산 복어는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곤 가지고 있지 않다. 요즘 우리가 먹는 복어는 전부 양식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안심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산 복어밖에 없었던 행복했던(?) 과거 미식가들이 죽음을 각오하면서 탐했던 복어는 우선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답다.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는 복어를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이라며 "천계(天界)의 옥찬"이라고 상찬했다. 옥찬(玉饌)이란 옥으로 만든 반찬으로, 복어 살이 옥처럼 희고 맑다는 뜻이다. 복어의 매력을 눈으로 즐겼다면 이제는 이와 혀로 느껴볼 차례다. 복어 살은 탄력이 기막히다. 콜라겐이 많아 쫄깃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담백하지만 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지방이 거의 없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비린내도 없다.

복어에서 가장 맛있는 건 이리다. 복어 수컷 뱃속에 든 정액 덩어리로, 눈처럼 하얗고 크림처럼 부드럽고 고소하다. 옛 중국 사람들은 복어 이리를 중국의 전설적 미인 서시(西施)의 젓과 같다 하여 '서시유(西施乳)'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치명적 맛을 지닌 복어가 제철을 맞았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2월까지 가장 맛있다. 국내에서 복어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한국식과 일본식으로 갈린다. 두 나라의 복어 즐기는 방식은 언뜻 봐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속내를 들여다볼수록 차이가 드러난다. 먼저 복어회. 일본식은 복어를 잡고 최소 10시간 이상 숙성시킨 뒤 회를 뜬다. 반면 한국식은 5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감칠맛을 따지면 단연 일본식이다. 하지만 탱글탱글한 식감을 선호하는 한국인에겐 감칠맛이 덜하더라도 씹는 맛이 살아있는 회를 선호하기에 짧게 숙성한다.

복국도 양국 간 차이가 있다. 한국식은 냄비에 복어 대가리로 뽑은 육수를 붓고 복어 살과 무, 콩나물을 넣고 끓인다. 복어 살이 익기 시작할 때쯤 미나리를 넣고 소금으로 간 한다. 고춧가루를 더해 얼큰하게 매운맛을 내기도 한다. 일본식은 가쓰오부시(말린 가다랑어) 육수에 복어를 넣고 배추, 버섯, 무, 두부를 더한다. 한국식 복국보다 깊고 복잡한 맛이지만, 한국에는 들척지근하다며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들도 많다.

한국식이건 일본식이건, 겨울이 가기 전 복어를 맛봤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진정한 팜므파탈이랄 수 있는, 독 품은 자연산 복어면 좋겠다. 기고자 : 김성윤 편집국 주말뉴스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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