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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썸바디' 정지우 감독 첫 시리즈 연출… 13國서 10위권

문제적 영화를 만들어온 정지우(54·작은 사진) 감독이 또 한 편의 논쟁적 작품을 내놓았다.

애증과 집착의 치정 스릴러 '해피엔드'(1999), 노교수와 젊은 제자 사이의 여고생 이야기 '은교'(2012)가 그의 작품. 이번엔 총 8화의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다.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데이팅 앱을 매개로 저마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핏빛으로 엇갈린다. 기괴한 19금 멜로다. 지난 18일 처음 공개됐고 22일 현재 세계 13국에서 시리즈 톱10(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라 있다.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뛰어든 다른 영화감독들처럼 그에게도 시리즈 연출이 처음이다. 22일 만난 정 감독은 "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고 했다. "영화를 찍으면 항상 계획보다 러닝타임이 길어졌어요. 원도 한도 없이 캐릭터와 관계를 만들며 길게 찍어보고 싶었죠. '썸바디'도 정통 드라마보다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에 있게 됐어요."

극중 '김섬'(강해림)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남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개발자. 마음의 작동 방식을 알고 싶었던 그는 대화 뒤에 숨겨진 감정까지 읽어내 짝을 지어주는 데이팅 앱 '썸바디'를 만든다. 하지만 앱으로 만남을 가진 여자들이 잇따라 살해되고, '섬'은 자기가 만든 인공지능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의문의 남자 '성윤오'(김영광)에게 직접 접근한다. '섬'의 친구들도 '윤오'와 엮이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가 주는 기묘한 두려움과 스릴은 주변에 있을 법한 일상성으로부터 온다. 대개의 믿음은 허약한 기반 위에 있다. 사람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 쉽게 허물어지고 믿어 버린다. 약한 인간, 허약한 마음, 그 끝엔 파국이 있다. 김 감독은 "다들 내 맘 같지 않은 상대, 내 맘 같지 않은 관계를 짊어지고 살지 않느냐"고 했다. "누구나 평범하지만 다정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악(惡)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천사의 얼굴로 다가오겠죠."

이 시리즈를 따라가는 동안 '섬'과 '윤오'의 마음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둘은 정말 서로 좋아한 걸까, 좋아한 척만 한 걸까, 아니면 욕망만 존재했던 걸까. 김 감독은 "그 3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가 제 생각이었지만 판단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며 웃었다. "어쩌면 여자의 관점에서 남자는 자신이 완벽하게 프로그래밍한 세상의 완벽한 버그였을지도요."

그의 작품엔 늘 어긋난 관계와 엇갈리는 욕망이 있었다. 혹시 사람 사이의 이해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걸까. 김 감독은 "부정적인 게 아니라 냉소적인 것 같다. 믿고 싶지만 쉽지 않은 게 아닐까"라며 크게 소리내 웃었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직업이 좋은 게, 영화를 만들다 보면 내 안에 있던 나도 모르던 나를 깨닫는 순간들이 올 때가 있어요. 어쩌면 이야기의 역동성 안에서 내 안의 어떤 충돌이 해소되고 순화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믿고 싶지만 믿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기고자 :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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