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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지나니 집회가 발목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한 아파트에 사는 한모(25)씨는 국내 IT 회사를 다니는데, 요즘 주로 재택근무를 한다. 하지만 지난 22일 만난 그는 "집에서 도저히 일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5월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후 각종 집회·시위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대통령실에서 500m쯤 떨어져 있지만, 경찰이 대통령실 근처까지 시위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의 집 50m 앞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과 신자유연대의 주요 집회 구역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한씨는 "소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화상 회의가 있을 때면 집에서 2㎞ 정도 떨어진 서울역 인근 호텔을 예약해 가서 업무를 본다"면서 "최근에는 계속 이명이 나타나 병원도 다닌다"고 말했다.

용산 대통령실 주변 주민과 상인들이 최근 각종 집회·시위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좌파 성향의 촛불행동이 첫 집회를 시작한 뒤 민원이 더 늘었다. 이 단체는 광화문 인근에서 집회하고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한 뒤 해산하는 식의 시위를 반복하고 있다. 참석 인원도 경찰 추산 2만~3만명에 이른다. 지난 19일이 15번째 집회였다. 여기에 반대하는 우파 성향 단체의 맞불 시위까지 생겨나면서 소란은 더 커졌다. '평온한 주말 저녁'을 잃어버린 주민, 상인들은 경찰 등에 민원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과거에도 청와대 인근 집회는 많았다. 하지만 상당수가 광화문광장에서 집회하고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행진했는데, 광화문 일대는 업무·상업 지역이라 일반 시민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집무실이 있는 용산 삼각지역 일대는 주거지가 많다. 삼각지역 사거리에서 반경 500m 안만 봐도 아파트 등 아홉 단지 1738가구가 있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볼 때 약 7000명이 집회·시위 인파나 소음 등으로 직접적 불편을 겪고 있는 셈이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14년간 미용실을 운영해온 김모(44)씨는 "코로나 이후에도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지난 5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풀렸지만 그 뒤 집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집회가 잇따르기 전에는 주말에 찾아오는 단골이 많았는데, 이제는 집회에서 나오는 소음에다 시위대가 상가 앞을 막는 일도 흔해 차를 가지고 오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김씨는 "주말에 2명 중 1명은 집회 때문에 당일 예약을 취소한다"면서 "찾아온 손님들도 상가 앞에서 열린 집회를 보곤 '이제 삼각지 못 오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삼각지역 인근 한 아파트에 사는 전모(33)씨 부부는 두 달 뒤 이사 갈 예정이다. 네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 산책하기도 힘들고 확성기로 각종 구호 등을 외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은 삼각지역 인근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난 8월 집회 때문에 가게를 1㎞쯤 떨어진 신용산역 인근으로 옮겼다고도 했다. 그는 "올해 입주한 지 6년째인데 지난 5년간 조용하던 동네가 올해 한순간에 시끄러워 산책은 물론 살기도 힘든 곳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자녀가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압둔 백모(42)씨는 "아이가 시위대를 보면서 '무서운 사람들이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요' 하고 물어보는데 당혹스러웠다"면서 "성인인 내가 봐도 수만 명이 모여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을 보면 위압감을 느끼는데 아이는 어떻겠냐"고 했다.

경찰도 주민 불만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주민 불편을 줄일 수 있을 만한 조치로 가능한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2조에는 '주요 도로'의 집회·시위에 대해선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 인근은 주요 도로로 지정돼 있지 않다. 경찰은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경찰 심의·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경찰위)는 지난 7일 "국민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란 취지로 제동을 걸었다. 소음 역시 처벌 규정이 약해 법을 개정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소음 기준을 어기면 확성기 사용 중지 명령 등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따르지 않아도 법원에서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하다 보니 효과가 낮다고 한다. 기고자 : 김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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