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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방울로 병 250개 진단＂ 속인 홈스, 사기 7년만에 11년형 받아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리다 하루아침에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꾼'으로 몰락한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가 10년 넘는 감옥 생활을 하게 됐다.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법원의 에드워드 다빌라 판사는 투자자들에게 가짜 기술과 사업 전망을 소개하고,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한 사기 혐의로 홈스에게 135개월(11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의 사기 행각이 발각된 지 7년 만이다.

엘리자베스 홈스 사건은 미 실리콘밸리의 치부를 드러낸 사기 사건이다. 피 한두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속여 투자자를 끌어들이면서 기업 가치가 치솟았지만 결국 사기로 드러났다. 홈스 사건은 그동안 미 실리콘밸리의 '될 때까지 되는 척하는' 문화가 만든 사건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창업자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며 실제 상용화가 힘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과대 포장하고, 투자자들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문화가 이러한 사기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작된 이미지였던 홈스

1984년 워싱턴 DC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홈스는 2002년 미 스탠퍼드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1년 뒤 학교를 중퇴하고 테라노스를 설립했다. 2012년 테라노스는 피 한두 방울로 콜레스테롤 수치부터 암까지 25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발명했다고 하면서 단숨에 바이오 벤처 기업의 신화로 떠올랐다.

금발에 파란 눈, 명문대 출신인 백인 여성 CEO(최고경영자) 등장에 실리콘밸리는 들썩였다. 수많은 투자자가 몰렸고 기업 가치가 치솟아 단숨에 90억달러(약 12조2000억원)가 됐다. 홈스는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색 터틀넥을 즐겨 입어 '여자 스티브 잡스'라고 불렸다. 2014년 경제 전문지 포천은 홈스를 커버 스토리로 다뤘고, 2015년 7월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이 테라노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테라노스 이사회에는 조지 슐츠, 헨리 키신저 등 미국 유명 정치인이 즐비해,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저명한 이사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테라노스가 투자받은 금액은 총 9억4500만달러(약 1조2800억원)에 달한다.

그의 사기 행각은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드러났다. 홈스가 개발한 진단 키트는 다른 의료용품 업체가 개발한 것을 고친 것이었고, 기껏해야 10여 종의 질병만 진단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공개했던 실험 결과들도 조작된 것이었다. 홈스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갈색이던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으며, 목소리도 중성적이고 걸걸하게 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몰락한 수퍼스타

사기극이 드러난 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8년 홈스를 사기와 투자자 기만 등 12건의 혐의로 고소했다. 미 캘리포니아 검찰도 홈스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테라노스는 2018년 폐업했고, 수퍼스타 홈스는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2015년 6조원으로 평가받은 그의 자산은 0원이 됐다.

재판은 홈스의 결혼과 임신, 코로나 사태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 미뤄졌다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 1월 배심원단은 12건의 혐의 중 4건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고, 검찰은 이에 대해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홈스는 재판에서 "나는 테라노스를 사랑했고 내 인생을 바친 일이었다"며 "나는 내 실패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사기가 고의적이지 않았고, 사기가 아닌 사업이 실패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미래 신생 기업의 사기를 방지하고, 혁신 기업 투자자에게 주는 신뢰를 되살리기 위해 135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홈스 측은 항소할 계획이다.

테크 업계에선 홈스 판결을 계기로 첨단 산업의 투자 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화이트칼라 범죄(경제 범죄)는 처벌이 약했지만, 최근엔 이러한 범죄에 대한 추적이 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파산 보호를 신청한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픽] 엘리자베스 홈스 사건 일지 기고자 :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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