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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허용된 '팬 페스티벌' 가보니
지하철역서부터 긴 행렬 이어져
짜증내다가도 손에 쥐면 웃음꽃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맥주 없는 축구는 축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축구 팬들에게 맥주는 필수품과도 같은 것인데, 이번 월드컵에서는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카타르가 주류를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기간 특별히 8개 경기장 주변에서 판매하기로 한 맥주는 개막 이틀 전 돌연 금지됐다. 92년 월드컵 역사에서 맥주와 함께하지 않는 첫 번째 월드컵인 셈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월드컵의 열기를 느끼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단 한 곳이 있다. 바로 FIFA(국제축구연맹)가 설치한 '팬 페스티벌'이라는 공간이다. 큰 전광판을 통해 다 함께 경기를 즐기라고 만든 이곳에서만 버드와이저 캔맥주를 판매한다. 지난 20일 개막전에 맞춰 이곳을 찾았다. 맥주 500cc짜리 플라스틱 컵을 손에 들기까지 기다린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코니세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오자마자 긴 행렬이 시작됐다. '팬 페스티벌' 행사장 근처로 가는 줄이었다. 경찰들이 강강술래 하듯 손을 잡고 통행을 통제하고 있어서 꼼짝없이 줄을 서야 했다. 한 영국인 남성은 "이렇게까지 이 빌어먹을 맥주를 마셔야 하는 나한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줄 서기' 문화가 몸에 밴 영국인인데도 기나긴 맥주 대기 행렬을 참을 수 없는 듯했다.

간신히 입구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기까지 5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몇몇은 격하게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언어인지도 몰랐지만 뜻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맥주 판매대에서 10분을 더 기다린 끝에 한국 호프집에서는 10초 만에 나오는 500cc 맥주를, 1시간 30분 만에 1만5000원을 내고 마실 수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사람들은 맥주컵을 손에 쥐자 어린아이같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게 월드컵이다" "줄을 서야 해도 매일 올 것 같다" 등 다들 얼굴이 벌게져서 '껄껄' 웃었다. 즐겁게 건배하는 사람들에게 친구냐고 물어보니 '여기서 처음 봤다'며 격하게 포옹했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팬은 엄지를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이 우승하는 것보다 이 한 잔이 훨씬 달콤해! 하하!" 기고자 : 도하=이영빈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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