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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은 예산안 야당이 입맛대로 깎아

주택 공급에 쓰는 기금인 국토교통부 주택도시기금의 용처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예산을 올해보다 줄이는 대신 분양주택 공급 예산을 늘려 국민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넓혀주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반지하 주택 거주자 등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면 임대주택 공급이 우선이라며 정부·여당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 국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분양주택 공급은 줄이고 임대주택 공급은 늘리도록 정부 예산안을 단독으로 고치자 정부와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소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55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국토부 예산안을 단독으로 수정해 의결했다. 정부가 올해에 비해 1조1138억원 늘리기로 한 분양주택 공급 예산을 1조1393억원 삭감해 올해보다 적게 만든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 예산은 정부가 올해보다 5조6445억원 줄이기로 했던 것을 백지화하고 오히려 4732억원 늘려 23조13억원으로 만들었다.

민주당은 앞서 정부가 임대주택 공급 예산을 5조원 이상 줄이겠다고 하자 "서민을 길거리로 내몰겠다는 것"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예산안"이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삭감한 분양주택 공급 예산은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던 '역세권 첫 집'과 '청년 원가 주택' 공급에 투입될 자금이었다. 청년이나 무주택자에게 도심에 소형 주택을 마련해주기 위한 예산이 민주당의 '임대주택 공급 확대' 기조에 따라 잘려나간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민주당 안대로 국토부 예산안이 바뀌면 내년부터 2027년까지 무주택 청년 등에게 50만호를 분양해주는 계획의 실현이 크게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국토위 민주당 관계자는 "반지하 주택 거주자 중에서 임대주택 입주를 신청해놓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주민들을 하루라도 빨리 임대주택에 넣어주는 것이 우선적인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반면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청년 주택 예산까지 없애버리는 것은 윤 대통령 공약이면 무조건 못 하게 하자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나라 국민의 꿈이 '내 집 마련'인데 그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악성(惡性) 삭감"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분양주택 예산 일방 삭감을 되돌릴 때까지 국토위 전체회의를 거부해 민주당 수정안의 통과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집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여야의 시각과 철학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주택이 거주의 대상이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공공임대주택이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주거 여건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민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본다. 야당 관계자는 "부동산·주택 문제만큼 진보·보수 정당이 극명한 시각 차를 드러내는 대상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분양주택 예산 삭감은 민주당이 임대주택 공급에 관한 좌파 단체들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주당은 당초 임대주택 예산을 정부 계획보다 7000억원 정도 늘리는 선에서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참여연대·민달팽이유니온 등은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축소안이 발표되자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을 꾸려 정부와 여야 압박에 나섰고, 그후 민주당이 '임대주택 예산 원상 복구 및 확대'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이 지난 15~17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내 소유의 집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성별이나 나이, 거주 지역, 생활 수준,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모든 조사 단위에서 '자가(自家)가 있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70%가 넘었다. 이 비율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54%,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69%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그래픽] 민주당이 바꾼 공공주택 공급 예산 기고자 :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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