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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는데 미 실리콘밸리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소환됐다. 바로 대규모 사기극을 벌인 바이오벤처 기업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다. 그는 피 한두 방울로 200여 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투자자가 몰리며 실리콘밸리의 수퍼스타로 떠올랐다.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한때 9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했다. 사기였고, 지난 12일(현지 시각)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FTX의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도 홈스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창업 3년 만에 FTX를 기업가치 42조원짜리로 만든 뱅크먼프리드는 '코인계의 JP 모건'이자 '가상화폐계의 수퍼스타'로 불렸다. 고객 돈을 멋대로 운용하고, 계열사 간 내부 거래로 회사 규모를 뻥튀기한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진 그랬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명문대 출신 백인이고, 사업보다는 이미지 관리에 치중했다. 홈스는 스탠퍼드대를 중퇴했고 금발에 파란눈이다. 스티브 잡스를 흉내 내 검은색 폴라티 위에 흰색 실험실 가운을 입었다. 뱅크먼프리드는 스탠퍼드대 교수인 부모를 뒀고 MIT를 나왔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자유분방함을 브랜드로 삼았다. 은근한 백인 우월주의가 깔린 실리콘밸리 투자 문화에서 보면 둘은 내세우기 좋은 아이콘이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벤처캐피털(VC)인 세쿼이아가 불과 두 달 전 FTX와 뱅크먼프리드를 소개한 글은 현재 조롱을 받고 있다. 세쿼이아는 "뱅크먼프리드에겐 (남을 도우려는) 구원자 콤플렉스가 있다. 우리는 그가 대담하고 전설적인 회사를 세우는 것을 돕는다"며 1만4000단어의 글로 칭송했다. 세쿼이아는 FTX의 파산 신청으로 투자금 2억1400만달러를 날렸다.

실리콘밸리의 잘못된 욕망과 관행은 홈스와 뱅크먼프리드의 몰락에 일부 책임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규모가 큰 유명 VC가 투자하면 다른 VC들이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실리콘밸리 FOMO(Fear Of Missing Out·뒤처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다. 이런 구조는 수년째 수익이 안 나지만 몸값은 수조원에 달하는 스타트업을 끊임없이 배출 중이다. 실리콘밸리 VC들은 스타트업 투자로 세상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수십억달러를 벌 수 있다고 자신한다. 투자한 회사가 망하면 시행착오쯤으로 여긴다. 블룸버그는 "실리콘밸리의 이런 오만은 평범한 개인을 파멸로 이끈다"고 했다.

홈스와 뱅크먼프리드의 공통점이 또 하나 늘어날 예정이다. 최근 6개월간 뱅크먼프리드를 따라다니며 그에 대한 책을 준비했던 작가가 영화화 판권을 판매 중이다. 홈스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이미 드라마로 제작됐다. 해당 영화가 나와도 볼 계획은 없다. 실리콘밸리의 비뚤어진 욕망이 전체 산업과 개인 투자자를 망치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고자 :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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