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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새 경제팀 면면을 보고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거시 경제, 금융정책 경험이 풍부한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이 믿음직스러웠다. 감세(減稅)와 규제 완화를 대표 정책으로 내세운 것도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전 정권이 떠넘기고 간 국가 부채 1000조원이라는 부담, 미국발 금리 인상에 따른 통화정책의 제약 탓에 재정·통화정책 면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제약된 점을 감안하면 '감세·규제 완화→투자 촉진→고용 확대→성장'의 선순환을 노리는 전략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 전략 청사진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에 발목이 잡혔다. 국민들 사이에 '새 정부가 뭘 보여줬냐'는 불만이 고조되는 와중에, 경제팀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정책 실책이 잇따르고 있다.

윤 정부 경제팀은 한전 30조원 적자와 물가 문제를 놓고 좌고우면하다 가구당 월 2200원 수준의 '찔끔 인상' 카드를 선택했다. 악수(惡手)였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한전은 운영 자금을 조달하고자 회사채를 25조원어치나 발행했다. 한전이 6%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회사채 자금을 싹쓸이하자 다른 기업들은 금리를 대폭 올리고도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해 '돈맥 경화'가 심화됐다. 국민 설득보다 숙제 미루기를 선택한 결과다. 다른 선진국처럼 전기료를 대폭 올리면서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저소득층에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써야 했다.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사태도 경제팀의 무사안일이 화를 키웠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부채 2050억원의 지급 보증 책임을 사실상 불이행하겠다고 선언했는데도, 금융 당국은 한 달간 방치했다. 채권시장이 마비되고 기업들이 아우성을 치자, 부랴부랴 50조원대 자금을 풀어 회사채, 기업어음을 사들이겠다는 긴급 대책을 내놨다. 그래도 자금 경색이 풀리지 않자 5대 금융지주 팔을 비틀어 연말까지 92조원대 신규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후속 대책도 내놨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정도로 사태를 키운 꼴이다. 이런 식의 돈 풀기 대책은 한국은행의 통화 긴축 기조와 어긋날 뿐 아니라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도 의구심을 품게 하는 자충수다.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은 경제팀이 레고랜드 사태에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걸 보여줬다. 흥국생명의 외화채권 조기 상환 실패는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이례적인 일인데, 금융 당국은 파장을 오판했다. 뭔가 찜찜했던지 금융위, 기재부, 금감원이 공동 보도 자료를 내고 "(금리를 더 올려주고 채권 만기를 연장한) 흥국생명의 조치는 합리적 선택"이라고 우겼지만 시장 반응은 딴판이었다. 해외 채권시장에서 한국물 채권의 가격이 폭락하고 거래 절벽으로 치달았다. 결국 정부는 엿새 만에 흥국생명 팔을 비틀어 조기 상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더 긴장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지만,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시장에서 난리가 난 와중에 열린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 했다. 왜 이런 무사안일이 되풀이될까.

장관 출신 한 경제 원로는 "관료들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장 일각에선 경제팀이 대부분 모피아 출신이라 상호 견제가 안 되고, 선민의식이 너무 강해 시장과 유리돼 있다고 지적한다.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에 대해 대통령실은 "금융시장의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과연 그런가. 한국물 채권 가산 금리가 급등하고, 기업들의 국내외 채권 발행이 마비된 현실을 호도하는 안이한 변명으로 들린다. 기고자 :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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