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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차범석희곡상 수상
'산을 옮기는 사람들' 김민정

"울면서 쓴 희곡이에요. 등단한 지 20년인데 낑낑대며 쓰는 게 한심해서 울고 나중에는 등장인물들이 안쓰러워 울고. 저마다 '산'이 있고 그 산을 부둥켜안는 게 삶일 텐데 어떤 이들에게는 삶이 너무 가혹해요."

지난해 10월 대학로에서 공연한 연극 '산을 옮기는 사람들'로 제16회 차범석희곡상을 받는 김민정(50)은 수상을 통보할 때 어떤 마감에 쫓기고 있었다. 비행기 모드를 잠깐 해제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고 얼결에 전화를 받았다. "네? 차범석희곡상이요? 어떡하지? 왜 제가 됐을까요? 정신 좀 차리고 다시 통화해도 될까요?"라며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극작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 중견 극작가는 '브라질리아' '바다거북의 꿈' '브루스니까 숲' 등을 발표했다. 차범석희곡상 수상작 '산을 옮기는 사람들'은 히말라야 작은 마을에서 중국 통신업체가 송신탑을 설치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며칠 지났는데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꿈도 안 꿔본 일이라 당황했어요. 사실 연극계에서 도망치고 싶었거든요. 공연해 관객을 만난 건 7~8년 만이에요. 내 작품이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나 보다 싶어 발을 빼려고 했어요. 그런데 차범석희곡상이라니, 굉장히 미안하고 큰 빚을 지는 기분이에요."

―'극작가 김민정'이 두 명 있는데.

"오해를 받아요. '큰 김민정(영화로도 나온 연극 '해무'의 극작가)'과 '작은 김민정'으로 나뉘는데 저는 대표작도 없고. 한때는 '작은 김민정' 말고 '예쁜 김민정'으로 불러달라 한 적이 있어요. 하하. 생존하느라 라디오 드라마를 많이 썼습니다. 10번째 희곡인데 신춘문예 당선 이후 축하를 받는 건 처음이에요."

―'산을 옮기는 사람들'에서 관객을 히말라야 고산 마을로 데려간 까닭은.

"연출가(최진아)가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써달라고 했고 몇 년 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이야기로 지금 이곳을 말하고 싶었어요. 벼랑 끝에 몰려 거기까지 간 주인공들이 다시 위기를 겪는데, 그들에게 산은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김민정에게도 그런 산이 있나요.

"현금서비스 받아 영국으로 날아가고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 러시아로 떠날 만큼 한때는 연극을 열렬히 사랑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관객이 두려웠고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연극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방을 내어주고 마음을 내어준 그들 덕택에 살 수 있었어요. 이렇게 큰 상을 주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쓸걸(웃음)."

―쓰는 과정은 순조로웠습니까.

"재촉을 여러 번 받았는데 제주도 가서 일주일 만에 술술 풀렸어요. 마지막 장면은 코리아나호텔에서 썼습니다."

―차범석 선생님과의 인연이라면.

"방송 작가를 할 때 남북 문화 교류에 대해 1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 적이 있고 장례식장에도 갔어요."

―수상 이후의 각오가 있나요.

"일흔다섯까지 쓰고 싶어요. 힘이 좋은 사람이 산을 옮기는 게 아니라 결국 미련한 사람이 옮길 테니까요. 언젠가 죽음이 날 데려갈 때 '차범석희곡상을 받을 만했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연극인들에게도, 차범석 선생님께도." 기고자 :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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