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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초연한 다국적 무용 콘서트 '공허여 안녕'

팬데믹과 전쟁으로 죽음이 흔해진 시대를 한국 전통굿이 위무했다.

지난 8일 밤 9시 20분(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님(N?xmes)극장. '공허여 안녕(Hello to Emptiness)' 유럽 초연이 끝나자 커튼콜이 5분간 이어졌다. 8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브라보!"를 외쳤다. 이날 무대에는 한국·그리스·우크라이나·스페인·프랑스 등에서 모인 전문 무용수나 가수가 많았지만 관객은 만신(萬神) 민혜경의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했다. 만신은 무녀를 높이 이르는 말이다.

독일 무부아르무용단과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이 공동 제작한 '공허여 안녕'(안무 슈테파니 티어쉬)은 도처의 죽음과 상실에 대처하는 법을 탐구한 무용 콘서트다. 지난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초연했고 이번이 첫 해외 무대. 한국 전통굿과 고대 그리스 비가(悲歌), 우크라이나 민요 등 애도의 오래된 전통을 현대적인 제의로 다시 구성했다. 8~9일 님극장 공연은 슬픔을 넘어서는 재탄생의 에너지를 보여줬다.

이 신작은 장구(악사 이동균) 반주와 함께 다국적 예술가 8명이 등장하며 시작됐다. 무대 한복판엔 물웅덩이가 있었다. "아가야, 무슨 일이야? 어떡하니?"(민혜경)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용수 2명의 몸이 사후경직처럼 굳었다. 물가에서 주검을 씻고 옮길 땐 여러 나라의 만가(輓歌)가 뒤섞였다. 크고 비통한 울음이었다.

물웅덩이는 어느 장면에서는 무덤 같고 어느 장면에서는 눈물 구덩이 같았다. 무용수들은 창자가 끊어질 듯 몸을 꺾고 비트는 춤으로 고통을 시각화했다. 한국춤 안무가 겸 무용수 장혜림은 느리게 슬픔을 응축했고 독일에서 활동 중인 현대무용수 김경무는 파워풀하게 움직였다. 다들 앉아서 가랑이를 벌리는 동작이 뒤따랐는데,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 잉태돼 있다는 상징으로 보였다. 총성과 포성이 들리는 가운데 그들이 좌우로 계속 구르는 동작에선 우크라이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러닝타임 80분 중 마지막 15분은 민혜경의 독무대였다. 이 만신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황해도 진오귀굿의 핵심인 '수왕천 가르기'를 실연했다. 공허에 길을 내듯이 광목천을 북북 찢으며 나아갔다. 동시에 곡(哭)을 터뜨렸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구나/ 남은 세상 잘 살아라, 고마웠고 사랑했다/ 바람결에 다녀가마 구름결에 스쳐가마/ 살며 메인 한을 풀고 참아온 설움 풀고 가마~" 오감으로 느끼라는 듯 자막은 제공되지 않았다. 한국 무당의 노래를 이해할 리 없는 프랑스 관객들에게도 아우라가 전해졌을까. 훌쩍이는 모습이 여럿 보였다.

민혜경은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1호 만구대탁굿의 전수교육조교(보유자 전 단계)다. 이날 작두가 아닌 댄스플로어에 서 있었다. 신내림을 받은 1989년부터 30년 넘게 굿판에서 익고 익은 기능·예능이 현대무용으로 확장된 셈이다. 안무가 슈테파니 티어쉬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 어두운 공허를 어떻게 마주할지 보여주고 싶었다. 민혜경의 한국 전통굿은 내 신작에 매우 특별한 에너지와 숨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김금화가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LA 녹스빌 국제박람회장에서 선보인 '철무리굿' 이후 전통굿 역사에서 가장 큰 이벤트"(무용평론가 진옥섭)라는 평도 나왔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 루안 라티고(프랑스)씨는 "무당의 춤과 소리는 낯설고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에너지가 강력했다"며 "문화도 언어도 다른데 내 깊은 슬픔까지 어루만진다는 데 놀랐다"고 했다. 민혜경은 말했다. "굿판에서 내 춤은 독무였는데 이번엔 군무라 외롭지 않았다. 앞으로는 '굿을 하는 아티스트'로 불리고 싶다." 이 만신은 곧 공개될 넷플릭스 드라마 '썸바디'에도 신엄마 역으로 출연한다. 기고자 : 님(프랑스)=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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