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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서핑하는 정신' 펴낸 한은형

가을·겨울철 강원도 양양 해변에선 젖은 머리에 해변용 슈트를 입고 다니는 서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여름보다 파도는 거세지고, 관광객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려 왔다. 한은형이 최근 낸 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작가정신)은 이 낯선 풍경에 대한 매우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겨울에 파도를 타면 춥지 않을까.

소설 속 화자는 회사 생활을 하다 번아웃(무기력증)에 빠진 직장인. 크리스마스 직전 휴가를 내고 양양 해변가의 상속받은 아파트로 떠난다. 우연히 서핑 강습을 들으며 초보 서퍼들과 교류한다. 서핑을 매개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 한은형은 "2018년부터 때때로 양양 해변을 찾아 머리는 노랗고, 피부가 탄 서퍼들을 봤다. 그들이 제가 소설을 쓰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왜 서핑을 주제로 소설을 썼나.

"각자 크고 작은 파도를 타거나,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다른 환경에 처해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서핑은 낯선 주제다.

"우리나라에서 서핑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처럼 떠내려온 보드를 주워 쉽게 파도를 탈 수 있는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와는 전혀 다르다. 일부러 바다를 가고, 장비를 장만하고, 사람을 피해 겨울이나 새벽에 서핑하는 모습이 애잔하고 짠내 났다. 그럼에도 보드에 서는 희열을 느끼려는 'K서핑'을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직접 서핑을 하며 파도를 탔나.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서핑 하냐고 의아해하더라(웃음). 나는 수영을 못 한다. 서핑 강습을 알아봤지만 결국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근데 오히려 서핑을 즐기지 못하는 경험이 새롭게 와닿았다. 인간은 태어나서 곧바로 설 수 없다. 한 걸음을 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서핑도 마찬가지다. 서핑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많은 순간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진하게 체험하도록 한다."

―직접 못 하는 스포츠를 소재로 쓰는 게 어렵진 않았나.

"저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책이 아닌 경험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다. 미약한 벽이라 할지라도 깨고,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낯설고 번거로운 환경에 나를 의식적으로 노출시킨다. 인생이 견디기 힘들 때 서핑에 다시 도전할 거다."

―파도가 주는 깨달음은 무엇인가.

"파도를 보고 있으면, 파도가 밀려가면 결국 밀려온다는 단순하고도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행동의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은 언젠가 돌아온다. 밀려갔다가 나중에 돌아오는 파도는 금방 밀려오는 것보다 거대하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파도를 타고 있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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