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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경제… '인재·신산업·기업환경'에 승부 걸어야
생산·소비·투자 감소와 부동산·증시 하락, 기업·정부 부채 증가까지 한국 경제에 악재(惡材)가 쏟아지고 있다. 전례없는 위기에 맞서 정부는 지난달 말 비상경제 민생회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잇따라 열어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12대 국가 전략 기술 육성' 같은 목표 달성의 기반인 우리 경제의 근간(根幹)이 허물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인재 양성과 신산업 발굴, 기업 환경이 모두 10년 넘게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이 세 가지 개선에 한국 경제 회생의 승부수(勝負手)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떠나는 기업
우리나라는 실제로 2000년대 들어 기업 활동에 매력과 인센티브가 없는 불모지(不毛地)로 변해가고 있다. 지방세를 포함한 명목 법인세율(27.5%)과 상속세율(최고 60%)만 봐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상속을 2~3대(代)만 하면 해당 기업은 국유화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는 또 16개 정부 부처 법률의 기업인 형벌 조항만 6568개 두고 있는 세계 최악(最惡)의 'CEO 형벌 공화국'이다.
기업분석 연구소인 'CEO스코어'의 김경준 대표는 "경제 관련 법안 중 과징금이나 과태료로 해결이 가능한데도 형사 처벌을 적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처벌 부담 때문에 외국인 경영자들은 한국 근무를 기피하고 있다"고 했다.
6년마다 국가가 회계법인을 지정해 감사(監査)토록 한 '지정 감사인' 제도와 대기업그룹 총수의 6촌 이내 혈족까지 매년 지정자료 제출을 의무화한 '동일인 지정' 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한다.
기업주엔 엄격하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안들이 매년 급증해 한국의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도는 162국 중 145위로 파키스탄(137위)보다 못하다. 기업들의 해외 탈출로 2011년부터 10년간 연 평균 4만9000여 개의 일자리가 유출됐고, 매년 7조5000억원의 투자 순(純)유출액이 발생했다.(전경련 추산)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기업과 기업인을 악(惡)의 뿌리로 보는 1970~80년대식 운동권 논리에서 벗어나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경제의 토양(土壤)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고급 인재가 없다
산업 현장에서 필수 인력 부족 현상이 매년 심화하는 것도 '아킬레스 건(腱)'이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2022년 상반기 국내에 부족한 일손은 64만명으로 작년 상반기(41만명) 보다 56% 넘게 늘었다. '인재 구인난(求人難)'은 첨단 업종일수록 더 심하다.
일례로 반도체 업계는 올해부터 1만3000명의 대졸 인재를 필요로 하지만,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매년 배출되는 인원은 9000여 명에 그쳤다. 안기현 반도체협회 전무는 "반도체를 제대로 배운 인재가 턱없이 모자란다. 정부가 반도체 대학을 매년 신설하는 중국·대만처럼 우리도 수도권 정원 총량제를 풀어서라도 인재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미래차 분야에서 2030년 수요 인력(10만7551명)을 맞추려면 2020년(7만2326명) 대비 50% 정도 늘려야 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달 "한국 조선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향후 5년 동안 4만3000명의 전문 인력이 추가 투입돼야 한다"고 밝혔다. 2차전지 업종에선 현재 석·박사급 연구 인력 1000명, 학사급 공정 인력 1800명이 각각 모자란다.
여기에다 중국 기업들이 국내 연봉의 3~4배에 이르는 파격 조건을 제시하며 한국 인재를 빼가는 것도 부담이다. 해외에서 교육받은 우수 인재는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국내서 키운 인재는 해외로 떠나가는 두뇌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 인구 감소로 국내 이공계 증원이 힘들어지는 만큼, 민관(民官)이 머리를 맞대고 특단의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만 보인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半導體)는 둘도 없는 '대들보'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8%, 광공업 생산의 10%를 차지할 뿐 아니라 단일 품목으로 총수출액의 20%를 담당한다. 2021년 반도체 수출액은 2위와 3위인 석유제품과 자동차 수출액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한국 경제는 그러나 반도체와 이를 포함한 10대 주력 업종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 의존하고 있다. 무역협회 분석을 보면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30년 가운데 반도체는 26번 연간 수출 1위 품목에 올랐다. 10대 주력 업종이 총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60%에 육박했다.
김경훈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수출 10대 품목이 10년 전과 똑같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가 그동안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은커녕 제대로 구조조정도 못 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올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우리나라가 7개월 연속 무역 적자 행진을 해 건국 이후 최대 무역 적자(356억달러)를 낸 것도 반도체 수출 부진 탓이 크다. 메모리반도체 업황(業况)에 따라 국민 경제가 요동치는 양상이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한국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과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세계 정상급"이라며 "제조업 고도화와 함께 고(高)부가가치 서비스 산업도 육성해야 좋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민생 안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금융·의료·교육 같은 고급 서비스 업종을 반도체에 버금가는 새 성장 원천으로 키우는 게 긴요하다는 것이다.
[그래픽] 해외로 나간 순(純)투자 금액
"체질 개선 실패하면 중진국으로 다시 추락할 수 있어"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우리나라 경제는 1960년대 초 이후 60년 만에 가장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체질 개선과 혁신에 성공한다면 선진국으로 안착하겠지만, 실패하면 중진국으로 다시 추락할 수 있다."
권태신<사진>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대기업 때리기와 무리한 탈(脫)원전 정책 등을 강행한 문재인 정부 5년은 우리 경제에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며 "특히 지난 정부의 반(反)기업 입법 홍수는 시장경제를 무력화하고 법치를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동력이 매년 약화하는 가운데, 지금 바깥에서는 자유무역주의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국 이익 최우선주의와 공급망 재편이 한창이다. 세계 경제의 급변을 우리에게 유리한 기회로 바꾸겠다는 경제주체들의 강한 의지와 유연한 발상이 필요하다."
권 원장은 "직전 정부가 남긴 부정적 유산과 어려운 국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정치권과 기업, 정부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일관되게 경제 활성화 노력을 벌여야 한다"며 "그러지 않는다면 5년 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0%대로 곤두박질쳐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이 '마지막 황금기회'라는 각오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실기(失機)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회에서 소수당이란 한계가 있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정부는 인재 양성·공급과 기업 환경 개선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권 원장은 "정치인과 국민들이 구(舊)시대적인 반(反)기업·반(反)부자 정서에 계속 머물러 경제를 정치화(化)해서는 모두 가난한 나라에 살게 될 뿐"이라며 "기업도 유능한 인재에게 과감한 성과 보상 같은 방식을 도입해 활력과 창의의 기풍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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