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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희생자들 눈물의 발인식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이모(17)군과 김모(17)군은 서울의 같은 고등학교 2학년 친구였다. 두 사람은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행사에 같이 갔다가 참사를 당해 모두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군은 서울삼육병원에, 김군은 성남중앙병원에 각각 안치됐지만 발인식은 같은 날인 2일 나란히 치렀다.

이날 오전 5시 이군의 어머니는 먼저 간 아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 행렬 맨 앞에 섰다. 그 뒤로 아들 친구 등 6명이 든 관이 따라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며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이군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꼭 끌어안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머니는 이군의 막내 여동생인 두 살 딸에게 "오빠 잘 배웅해주고 올게"라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이군 어머니는 운구차에 탄 뒤에야 눈물을 터뜨렸다. 이군은 4남매 중 맏이로 동생들을 잘 챙기는 믿음직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이군의 할아버지는 "손자가 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세 동생 용돈이라도 주고 싶다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며 "성품이 착하디착했다"고 했다.

김군의 관이 실린 운구차는 이날 오전 8시 김군이 다니던 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왔다. 5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김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나왔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품에 안고 10여 분간 학교를 둘러본 뒤, 교사와 학생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김군을 대신해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이다. 김군의 어머니를 바라보던 학생과 교사들도 눈물을 흘리며 김군을 애도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관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했다. 김군의 작은 외할아버지는 "사고 소식을 듣고 쓰러졌던 아이 아버지는 충격이 너무 커서 발인에도 참여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 발인식은 이날 전국 각지에서 진행됐다. 윤모(15)양은 어머니 정모(46)씨, 이모 정모(52)씨와 함께 이태원에 갔다가 참사를 당했다. 이날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선 딸 윤양과 어머니 정씨 발인이 동시에 이뤄졌다. 지인 40여 명은 모녀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울부짖었다. 한날한시에 아내와 딸을 보낸 남편은 참사 소식에 충격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에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빈소를 비공개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했다. 윤양의 이모 정씨 발인도 같은 시각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열렸다. 20여 년 근속한 구로구청 공무원 정씨는 내년 초 승진을 앞두고 있다가 참사를 당했다.

애도는 대학가에서도 이어졌다. 고려대 서울캠퍼스 타이거플라자에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임시 분향소가 설치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이 적힌 꽃다발 수십 개가 놓였다. 고려대에선 대학원생 1명이 이태원 참사로 숨졌다. 대학생 최모(24)씨는 "이태원에 자주 갔었는데,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인 2명과 한국 학생 1명 등 희생자 총 3명이 발생한 한양대에도 분향소가 세워졌다. 분향소 내부에는 '간호대학 학생(방문학생)' '경영대학 학생(방문학생)' '자연과학대학 학생' 등 이태원 참사로 숨진 학생들의 소속이 적힌 위패가 걸렸다.

미국 연방 하원 의원의 조카로 한양대 간호학과 교환학생으로 왔던 미국인 앤 마리 기스케(22)씨는 생일 이틀 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사를 당했다. 기스케씨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동아리 회원이었을 정도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원생 백모(26)씨는 "오전에 학교에 올 때 방문하고, 오후에 집에 갈 때 다시 들렀다"며 "학교를 다니며 나와 같은 공기를 마셨을 사람들이 이런 참사를 당한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강대학교 체육관 앞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는 애도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 수백 장이 바람에 나부꼈다. 일본인, 태국인 교환학생 희생자를 위한 애도 글이었다. 재학생 권모(24)씨는 "이번 참사는 이 친구들이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비극"이라고 했다. 기고자 : 이기우 기자 김광진 기자 박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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