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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사회가 이재용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2014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그룹 경영을 총괄해온 이 신임 회장은 이번 승진으로 명실상부한 삼성그룹 총수가 됐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외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하다.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삼성은 반도체·배터리 등의 전략 산업 분야에서 고난도의 방정식을 풀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세계 경제 침체까지 겹쳤다. 이 회장 선임 소식이 전해진 날,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31% 격감한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됐다.

이 회장은 사내 게시판에 올린 '미래를 위한 도전'이란 글에서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정확한 성찰이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미국 인텔 등의 도전을 받고 있고, 파운드리 분야는 대만 TSMC의 아성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이후 새로운 먹거리와 혁신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대로면 삼성의 성장 동력은 고갈되어 갈 것이다.

선대 회장들이 워낙 큰 족적을 남겨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한국에 처음으로 기업다운 기업을 만든 사람이다. 반도체 진출을 결단한 호암의 통찰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도 없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 '세계 1등 DNA'를 심었다. 그는 1987년 취임식에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고 약속을 지켰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1995년 휴대폰 15만대 화형식 등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이 신임 회장은 2014년부터 그룹 경영을 총괄하며 그룹 지배 구조와 사업 분야를 개편하는 등 나름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래 성장 분야를 개척하는 혁신 리더십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세계 경제 무대는 잠깐의 지체가 몰락을 부르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 삼성그룹은 선대 회장 시절 투자했던 반도체, 스마트폰, TV에 매출과 영업이익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새 사업 분야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1년 반 이상 감옥에 갇히고, 다른 사건으로 또 기소되는 등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힌 영향도 있을 것이다. 회장으로 승진한 직후 그가 첫 번째로 간 곳도 사업 현장이 아닌 법원이었다. 하지만 선대 회장들도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삼성 신화'를 일구어 냈다. 이 삼성 신화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이 회장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과제다.

한국에 삼성은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다. 한국인도 글로벌 톱클래스로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기업이다. 삼성 이전에는 누구도 그런 꿈을 꾸지 못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당연한 듯이 그런 꿈을 꾸고 있다. 한국 기업인들은 다른 선진국 기업인들과는 달리 크든 작든 '사업보국'이란 철학을 갖고 있다. 워낙 가난한 나라에서 설움받고 살아온 역사 때문일 것이다. '사업보국'이란 사시를 가장 먼저 내건 기업이 삼성이다. 신임 이 회장이 삼성을 더욱 발전시키고 선대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사업보국'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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