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1983년 인천시는 '인천개항100주년기념탑'을 중구 항동 큰길 한가운데에 높게 세웠다. 당시 무려 11억 4000여만 원이나 들였으나 모양새가 이상했다. 높이 30m 탑 정상에는 정체 모를 여신상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쳐들고, 어부 10여 명과 시민 2명 모습은 바다에서 막 귀항하듯 내륙 쪽을 향했다.

'개항'이 '자주적으로 항구를 열고 타국과 호혜관계를 꾀하며 정치, 경제, 사회 등 상호간 이익을 취한다'라면, 이 탑은 자주적인 해양진출을 상징한다는 건립 취지를 무색케 했다.

강화도조약 이후 지식인들은 "제물포는 도성의 인후(咽喉)라 제물포를 개항하는 것은 나라를 내주는 것과 같다"고 절규했지만, 당시 조선은 개항, 세관, 관세 등 개념도 모르는 외교적 유아였다. 실제로 '인천 개항' 준비는 '인천주재 일본영사관'이 했다. 그래서인가. 인천 개항 기록이 우리 측은 전무한데, 일본은 태정관 어포달(御布達) 제30호에 "조선국인천개항도항통상득지(朝鮮國仁川開港渡航通商得旨)"라고 명시하고 있다. 인천 개항은 '일제에 강제되어 일방적으로 서구 근대 자본주의의 변방에 편입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이후 개항이 무슨 기념할 일이냐는 여론이 비등했고, 2003년 기념탑은 철거됐다.

그런데 지난해 인천시 중구가 느닷없이 또 '개항'을 되살려내 빈축을 샀다. 송월동과 북성동을 합쳐 '개항동(開港洞)'으로 바꿨다. 또 다른 퇴영적 역사인식이다. 시, 중구, 인천관광공사는 또 매년 '개항장 야행' 행사를 하는데 무슨 메시지를 시민과 후대들에게 전하려는지 의문이다.

인천에는 아직도 일제 잔재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송도동'이다. 인천 남쪽 경제자유구역을 통칭 '송도국제도시'라고 명명한 것은 전적으로 행정 착오였다. 인천엔 '송도(松島)'라는 섬이 없었는데 굳이 그곳을 '소나무 섬'이라 부를 이유는 없다.

1939년 일제가 인천부 영역을 넓히면서 '옥련리(玉蓮里)'를 '송도정(松島町)'으로 바꾼 게 화근이었다. '송도'는 일본의 3대 명승지의 한 곳이자, 군함 이름으로 인천 지명 중 12곳이 군함 이름과 같았다. 인천시가 군국주의를 다시 부활시켜 준 꼴이다. 군국주의 망령을 앞세워 '국제도시'를 지향한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시는 행정구역 개편에 앞서 일제 잔재인 지명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만사가 다 뒤틀리는 법이다. 해방 70년이 지나도록 제 땅이름 하나 찾지 못한대서야 어찌 국가의 정체성과 내일을 꾀할 수 있겠는가? 기고자 : 조우성·전 인천시립박물관장
본문자수 : 126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