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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써온 식기 건조대에 녹이 슬었다. 유명 상표 제품이고 모양이 맘에 들어 산 물건이다. 녹이 슨 부분에 설거지해둔 식칼이 닿으면서 칼날에도 녹 얼룩이 생겼다. 물받이가 플라스틱이어서 물때가 잘 낀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예전부터 생각해뒀던 스테인리스 식기 건조대를 검색해보니 여전히 너무 비쌌다. 일본 제품이고 백화점에서 30만원이나 해서 '식기 건조대의 샤넬'이라고 한다는 제품이었다. 해외 직구만 가능한 듯했고 배송비까지 합쳐 20만원 가까이 됐다. 그저 평범한 사각형 틀에 작은 직사각형 틀이 매달려있는 제품이었다. 스테인리스 제품 하나에 20만원은 망설여지는 금액이었다.

검색을 하다 거의 똑같이 생긴 국산 제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격은 수저 건조대까지 포함해 9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소셜미디어도 하지 않고 블로그도 쓰지 않지만 이럴 땐 이런 제품 후기를 인터넷에 올려주는 사람들이 참 고맙다. 냉큼 주문했다.

마트에 가면 2만~3만원짜리 스테인리스 식기 건조대가 있으니 9만원도 굉장히 비싼 축이다. 그런 데는 이유가 있다. '304 스테인리스'라고 하는 고급 스테인리스 강철을 쓰기 때문이다. 304 스테인리스는 잘 부식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물이 닿아있는 식기 건조대에 적합한 재료다. 내식성이 좋은 것은 철에 크롬과 니켈을 섞은 합금이기 때문인데, 크롬이 18%, 니켈이 8% 포함돼 있어 '18/8 스테인리스'라고도 부른다. 니켈이 10% 포함된 18/10 스테인리스도 있고 가격도 더 비싸다.

이에 비해 중국산 제품을 비롯한 저렴한 스테인리스는 201이나 202라고 한다. 식기나 냄비에 그냥 '스테인리스'라고 쓰여 있다면 200번대일 가능성이 높다. 고급 식기나 냄비엔 304나 18/10 같은 숫자가 새겨져 있다. 316 스테인리스도 있는데 이 강철엔 몰리브덴이 첨가돼 있어 내식성과 내열성을 더욱 높였다. 최고급 주방용품이나 항공 부품, 임플란트에 쓰이는 비싼 재료다.

이런 걸 모르는 남편들이 왕왕 "스뎅 냄비 하나 사는 데 무슨 돈을 그리 많이 쓰냐"고 구시렁댄다. 18/10 스테인리스는 평생을 쓰고 후대에 물려줄 수도 있다. 살림도 공부하면 훨씬 현명하게 할 수 있는 법이다.

오늘 스테인리스 공부를 하다가 못 볼 걸 봤다. 304 스테인리스로 만든 싱크대 배수구 거름망이 있었다. 뚜껑까지 합쳐 무려 3만원이었다. 살까 말까 하다가 좀 더 후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뭐가 되려고 이런 데 관심이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