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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빚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과잉생산·예산낭비만 불러와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쌀값 안정화'에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의 쌀 소비량이 해마다 줄어 쌀 재배 면적을 줄여야 하는 판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 정부가 남는 쌀을 무조건 사주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1980~1990년대 농업 예산 과다 지출로 골머리를 앓은 유럽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당시 유럽에서는 정부가 수매해 비축한 농산물로 "와인이 호수를 이루고 버터가 산을 이룬다"는 표현이 흔히 쓰였다.
◇40년 전 유럽, 농산물 과잉으로 골머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전후 경제 회복을 위한 안정적인 식량 생산이 주요 과제였다. 1957년 로마조약에서는 '농산물 생산 증대'와 '농업인 소득 안정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유럽 국가들은 1962년 '유럽 공동 농업 정책(CAP)'을 마련해 농산물에 대한 최저 가격 수준을 정부가 보장하고, 역내 시장에 과잉 공급된 농산물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해외에 수출하는 농업 보호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CAP는 농산물 과잉 생산을 조장하고, 이는 농업 예산 과다 지출로 이어진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환경자원경제학)의 'EU 공동농업정책의 구조 정책 변화에 관한 연구(1994)'에 따르면, 1970~1980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의 농산물 생산량은 매년 2% 증가했는데, 수요는 0.5~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잉여 농산물이 큰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1980년대 유럽의 밀 생산량은 수요를 30% 초과하고, 버터와 소고기의 초과 생산량은 각각 34%, 10%에 달했다. 곡물·우유·소고기 등 EC가 보호하는 모든 품목이 남아돌기 시작하자 정부 수매량이 늘고 이에 따른 공공 저장량도 급속히 늘었다. 일례로 버터의 1979년 말 공공 저장량은 29만3000톤이었는데, 1986년 말 129만7300톤으로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잉여 농산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수치로 확인된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의 경제지표 변화를 보면 유럽의 농산물 총생산량은 1975년 대비 1987년 26.5% 증가했지만, 농업 순부가가치는 22.5% 감소하고, 농업 취업 인구는 26.8% 줄었다. 김 교수는 "높은 가격 지지 정책으로 농산물 생산량은 늘렸지만, 잉여 농산물 저장과 처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는 '대가'를 치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시장 격리 의무화하면 공급 과잉 구조 해결 못 해
한국도 '남는 쌀'이 문제다. 쌀 생산량은 연간 0.7%씩 감소하는데, 쌀 소비량은 1.4%씩 감소해 감소 폭이 훨씬 빠르다. 2000년 93.6kg에 달하던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2021년 56.9kg으로 급감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면 "벼 재배 유인이 증가해 쌀의 구조적 공급 과잉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재정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면, 2030년 쌀 초과 생산이 약 64만톤에 이르고, 시장 격리에 소요되는 예산은 약 1조40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한 해 평균 약 20만톤이 초과 생산되는데, 이보다 약 40만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는 설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농해수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해당 법안을 단독 처리하자 국민의힘은 "날치기"라며 맞서는 중이다. 정부도 "의무 매입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17일 기자실을 찾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농업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재차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지난 13일에도 가루 쌀 수확 현장에서 "쌀은 농업인 입장에서 가장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품목인데, 의무 매입으로 가격까지 보장한다는 시그널을 주게 되면 과잉 생산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대통령 거부권'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는 20일 농식품부 종합국감 때도 또 한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연간 1인당 쌀 소비량
[그래픽] 시장격리 의무화할 경우 쌀 생산량 및 예산 전망 기고자 :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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