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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집 | 문학동네 | 276쪽 | 1만4000원

갈수록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다. 경제 위기, 코로나, 기후변화...여러 바람이 우리의 삶을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바꾸고 있다. 예측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상상의 여지는 줄어든다. 미래는 바꿀 수 없다고, 지금 어떻게 살든 결론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에게 작가는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29쪽)

표제작 속 외삼촌의 이 말은 소설집의 핵심이다. 미래를 기억하라는 것. 언젠가 올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 1999년 동반 자살을 앞둔 '나'와 '지민'은 지민의 엄마가 예전에 쓴 소설을 찾아 나선다. 출판사 편집자인 외삼촌이 들려준 소설 내용은 이렇다. 한 연인이 동반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자 두 사람은 그날부터 처음 만났던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두 번째 삶을 산다. 잊고 지냈던 첫 만남의 기쁨을 느끼며, 두 사람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삶의 황홀함을 경험한다. 첫 만남에 이르자 시간은 다시 미래로 흐른다. 둘은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세 번째 삶을 산다.

소설을 접한 뒤 '나'와 '지민'의 삶은 달라진다. "두 사람은 결혼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고, 자살을 단념한다. 둘은 결혼해 함께 맥주를 마시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자살을 결심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을 '놀라운' 광경이다. 예언이 미래가 된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충실히 살았다. 소설 속 연인의 세 번째 삶처럼 말이다.

1993년 시로 먼저 등단한 이후 쓴 장편소설만 10권, 단편집 5권. 이제는 명실공히 중견에 이른 작가가 9년 만에 낸 6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상실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8편을 모았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며 40대 들어 비관에 빠졌다"던 쉰두 살의 작가가 비관을 벗어나며 쓴 작품들. 2014년 쓴 두 편 외에 나머지는 코로나 이후 최근 풍경을 담았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지는 작가만의 글쓰기, 그리고 이를 통해 각자 미루어 짐작하는 좀 더 나은 세상이 그 안에 있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독특한 사유가 곳곳에 묻어 있다. 경험한 것이 기억된다는 통념과 달리, 기억은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다. 만난 적 없는 사람한테 위로를 받은 후로 그 사람을 계속해서 기억한다('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거나 사랑의 기억은 이별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사랑의 단상 2014')는 작품이 그렇다. 나아가, 한 인간의 육체에 담긴 기억은 유한하지만, 정신에 담긴 기억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후대에 무한하게 이어진다('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고 그는 말한다. 짧은 시간 속에서 비극적일 수밖에 없던 일들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낙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바람이 몰아치는 삶 속에서 비관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존재는 '타인'이다. 단편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은정은 병으로 아이를 먼저 떠나보냈다. 바람에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라는 친구의 위로가 은정을 살아가게 한다.

'진주의 결말'은 치매를 앓던 남성이 죽은 사건의 용의자인 딸이, 자신에 대한 범죄심리학자의 의견을 반박하며 전개된다. 좁혀지지 않는 둘의 의견처럼,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바람에 넘어지더라도, 타인을 계속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73쪽)

작가는 타인과 함께 바람에 맞설 때,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위로를 건넨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이들 입을 통해 후대로 전달된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나중에 온다"는 작가의 생각은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을 사는 누군가에게 '평범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부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