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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울리는 신용위기 경고음

가파른 금리 인상에 경기 침체 조짐까지 나타나면서 우리나라의 신용 위기 가능성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는 최근 급등했고, 가계 및 기업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이자 부담이 가중되며 대규모 부실 우려도 높아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가치의 추락이 제2의 아시아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다"며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한국이 특히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신용 위험 커지는 韓

우리나라의 신용 부문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 채권(달러 표시)의 부도 위험도가 연중 최고치까지 치솟으면서부터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5년 만기 외평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은 지난달 29일 기준 61bp(0.61%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이는 지난 7월 6일 기록한 종전 연중 최고치(56bp)를 넘어선 것이다. CDS는 채권 발행자가 부도를 내면 투자은행·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대신 빚을 갚아주는 파생상품으로 보험과 성격이 비슷하다. 이때 금융회사가 받는 수수료를 'CDS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즉 CDS프리미엄이 높을수록 부도 위험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CDS프리미엄은 지난달 말 60bp를 넘어선 이후 소폭 하락해 50bp대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지난해 평균치(20.7bp)와 비교하면 여전히 3배 가까이 높은 상태다.

지난 3일 기준 우리나라의 CDS프리미엄은 56.8bp로 미국(27.9bp), 일본(27.9bp), 독일(23.8bp), 캐나다(34.9bp) 등 선진국 대비 30bp가량 높다. 중국(105.6bp)과 인도(167.5bp), 인도네시아(155.7bp) 등 주요 신흥국에 비해서는 낮지만 상승 속도는 더 가파르다. 지난 1분기 평균치와 비교해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CDS프리미엄은 각각 64.6%, 57.7% 상승한 반면 우리나라는 106.5%나 올랐다. 위안화 가치 폭락 사태를 겪고 있는 중국의 CDS프리미엄 상승률도 95.9%로 한국보다는 낮다.

회사채 금리(AA-등급)와 국고채 금리(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가 빠르게 상승하는 점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하반기 우리나라의 신용스프레드는 7bp 상승(1.44%→1.51%)했는데, 미국(-2bp)과 독일(-3bp)은 오히려 감소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CDS프리미엄, 신용스프레드 모두 절대적 수준보다 상승 속도가 문제"라며 "팬데믹 사태를 제외하면 국가 신용 위험 지표가 이 정도로 빠르게 높아진 것은 최근 수년 간을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파른 美금리 인상에 경기 침체까지

우리나라의 신용 위험 수위가 높아진 것은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달러 초강세 현상에 따른 원화 가치 폭락과 외국인 자금 이탈로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의 금융 불안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대내 요인도 한몫했다. 특히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가계 및 기업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가계·기업 총 부채(민간 신용)는 역대 최대인 4345조70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221.2%까지 불어났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5.4%로 미국(77.2%), 일본(68.9%), 독일(56.2%), 중국(61.4%)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도 115.2%로 미국(80.6%), 독일(72.1%), 영국(67.9%)보다 30~50%포인트가량 높다. 기업 부채 비율은 일본(117.4%)과 비슷하고, 중국(156.7%)보다는 낮지만 경제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 밖에 무역 적자 장기화, 부동산 시장 냉각 등으로 경기가 침체 국면을 보이는 것도 우리나라 신용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원화 가치 하락에도 무역수지 개선이 되지 않는 등 경기가 전반적으로 매우 부진한 상황이어서 부채 압력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 '퍼펙트 스톰' 올 수도"

신용 위험이 커지면서 주가와 채권, 원화 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은 한층 심화하고 있다. 같은 아시아권의 중국 상하이 종합 지수와 일본 닛케이 지수가 지난 한 달간 7% 가량 하락하는 동안 코스피 지수는 11% 떨어졌다. 지난 8월만 해도 연 3%대 초반에 머물던 한국의 3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말 연 4.4%까지 치솟았고(채권 가격 하락),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3분기에만 10% 넘게 상승(원화 가치 하락)했다.

정부는 과거 대형 경제 위기와 비교해 CDS프리미엄이 아직 한참 낮고, 외환보유고가 충분한 상태라는 점을 근거로 신용 위기론에 선을 긋고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우리나라 CDS프리미엄은 600bp가 넘었다. 8월 말 현재 외환보유고도 4364억달러로 금융 위기 때(2004억달러)의 2배가 넘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중국은 외환보유고(3조713억달러)가 세계 1위인데 GDP 대비로는 18%이고, 우리나라는 25% 수준으로 더 높다"며 "위기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는 게 외부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금리 인상 사이클이 한참 남아있어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과 내수를 대표하는 반도체와 부동산 경기가 악화 일로라는 점도 위험 요소다. 당장 신용 위기가 닥치지 않더라도 관련 지표들이 계속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면 국가 신용 등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선임연구원은 "금리는 내년 2분기쯤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정점인 상태로 상당 기간 횡보하며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이 높게 유지될 것"이라며 "내년 하반기에는 신용 리스크가 본격화하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한·미·일 3국의 올해 CDS프리미엄 / 주요국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기업 부채 비율 기고자 :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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