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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산 첫 자가용은 현대차 포니1이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아파트가 흔치 않았고 승용차는 자가용이든 개인택시든 골목길에 세워뒀었다. 자동차 보닛 위에 솟은 엠블럼을 동네 꼬마들이 떼어 달아나던 때라, 주차하고 난 뒤엔 회색 비닐 포장을 차에 씌워놓곤 했다. 자가용이 명실상부 재산 목록 1위이던 시절이다.

날씨가 좋으면 아버지는 삼형제를 데리고 골목길로 나가 세차를 하셨다. 마치 자동차를 분해 조립해서 청소한 것처럼 구석구석 씻고 닦고 왁스칠을 했다. 세차라기보다 설거지에 가까웠다. 물 세차가 끝나면 꾸덕꾸덕한 왁스를 차에 바른 뒤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마른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1990년대 초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길거리에 BMW가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비싼 차를 주차장도 아닌 길거리에 세워두다니, 미국은 정말 부자 나라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하루에 한 대도 보기 어려운 차들이었다. 그랬던 우리나라에서 언젠가부터 BMW를 '강남 쏘나타'라고 하더니 요즘은 포르셰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후배가 미국에 연수 가서 새 차를 뽑았다. 미국은 수퍼마켓 갈 때도 고속도로 타는 게 일이니 차에 먼지와 벌레가 늘 덕지덕지 붙어 있다. 한국에 계시던 어머니가 다니러 와서는 차 꼴이 저게 뭐냐, 하고 혀를 찼다. 후배 내외가 잠시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차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차 전체에 골고루 잔 흠집이 났다. 어머니가 냄비 닦는 수세미로 정성 들여 세차해 놓은 것이었다.

4년 전 차를 바꾼 지 얼마 안 돼 식당 주차장에서 문짝을 긁혔다. 속이 상해 CCTV를 찾아보니 어떤 노인이 차 밑에 굴러 들어간 과일을 꺼낸다고 주차장에 있던 긴 빗자루를 이리저리 휘젓다가 긁어놓았다. 서비스센터에 물어보니 도색에 80만원이 든다는데 노인은 "내 비상금 전부"라며 20만원을 내밀었다. 동네 카센터에 가니 30만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문짝 긁혔다고 차 안 굴러가냐, 하고 그냥 타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늘 삐딱하게 세워놓은 차들이 있다. 두 칸을 다 차지한 것도 아니고 주차선 한쪽에 바짝 붙여 옆에 차를 세울 수 없게 해놓았다. 내 경험에 따르면 아주 비싼 차들은 그렇게 세우지 않는다. 어중간한 고급차 주인들이 그런 짓을 한다. 그렇게 차가 귀한데 어떻게 추운 주차장에서 떨게 놔둘까, 주머니에 넣어 모시고 갈 일이지. 볼 때마다 수세미로 냄비 닦듯이 골고루 세차해 주고 싶다. 기고자 :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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