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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결장으로 논란 된 벤투 리더십 분석해보니

지난달 27일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과 카메룬 대표팀의 A매치 평가전이 열린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객석을 가득 채운 6만여 관중은 연방 "이강인"을 외쳤다. 무려 1년 6개월여 만에 대표팀에 다시 선발된 이강인(21·RCD 마요르카)이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의 간절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은 끝내 이강인을 투입하지 않았고, 우리 대표팀은 전반 35분 손흥민의 득점을 간신히 지켜내며 1대0 진땀승을 거뒀다. 후반전 도중 전광판에 벤투 감독의 얼굴이 비칠 때는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경기 후 벤투 감독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강인'을 외친 함성에 대해 "귀가 2개이니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고, 이강인의 결장 이유를 묻는 질문에 "왜 매번 전체 팀이 아닌 개별 선수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벤투의 이런 태도에 일부 팬은 "고집불통 감독을 그대로 두면 월드컵은 보나 마나 실패"라며 지금이라도 새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타르 월드컵 개막까지는 불과 43일. 대체 팬들은 왜 이렇게 분노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벤투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누적된 불만과 의문들이 이강인 결장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주말〉의 취재에 응한 축구계 인사들과 전문가들은 "지금 감독을 경질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도 "팬들의 불만과 불안은 이해한다"고 했다. 이들은 월드컵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인 만큼 모두 익명으로 의견을 담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강인 배제, 이유 있는 결정?

전문가와 축구계 인사들은 대부분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한 경기라도 교체 투입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강인을 결장시킨 벤투의 결정이 아무 이유가 없거나 무작정 불합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시즌 이강인은 스페인 라 리가 중하위권으로 분류되는 RCD 마요르카에서 매번 주전으로 맹활약 중이다. 7경기에서 1골 3도움으로 라 리가 도움 공동 선두인 동시에 드리블 돌파, 찬스 메이킹 등에서도 최상위권 기록을 보이고 있다. 팬들로선 "이런 선수를 경기에 뛰게 하지 않을 거면 애초에 왜 선발한 것이냐"는 비판을 참기 어렵다.

이강인이 이번 대표팀 소집에 응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한국까지 편도만 약 14~17시간의 비행시간을 소요한 것도 팬들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대표팀 경력이 있는 인사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 인사는 "이강인이 1년 6개월 동안 대표팀에 없었기 때문에 감독으로선 직접 보면서 기량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감독으로선 출장 여부와 관계없이 직접 불러 훈련과 연습 경기 등에서 선수를 관찰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강인을 결장시킨 벤투의 판단에 대해 전문가들은 "벤투 감독이 기존 선수들에게 신뢰를 표한 의도가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월드컵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강인이 경기에 투입되면 그간 대표팀에서 뛰어온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동요할 수 있다"며 "벤투로선 이강인을 배제함으로써 그간 믿고 기용한 선수들에게 '나는 너희를 믿는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축구계 인사는 이런 벤투의 고집이 대표팀의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일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뛰지 못하면 기존 멤버들은 자만하거나 경기력이 떨어질 수 있고, 후보 선수들 사이에선 '대체 얼마나 잘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느냐'는 의문과 무기력감이 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인을 기용하라는 팬들과 언론의 압박이 오히려 결장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 축구계 인사는 "감독에게 선수 선발과 출전 결정 권한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라며 "만약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이강인이 출전했다면 기존 선수들은 '감독이 여론의 압박에 굴복했다'고 느낄 것이고, 이 경우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들과 다져온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여론이 벤투를 이 정도로 압박하지 않았다면 이강인이 출전할 확률이 도리어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일관성이냐, 똥고집이냐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벤투 감독이 선보인 경기력이 월드컵에서 만날 강팀에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팬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게 본질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 인사는 "손흥민, 김민재 등 어느 때보다 대표팀 선수들의 수준이 높다 보니 팬들의 기대도 크고, 동시에 월드컵에서 만날 상대들이 워낙 강하다 보니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 기대와 불안이 벤투 감독에 대한 비판으로 집중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벤투의 리더십에 대해 한 전문가는 "좋게 말하면 일관성이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후방부터 패스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빌드업 축구를 강조하지만, 강팀을 상대로 통할 만큼 완성도를 갖춘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벤투 감독은 아시아권 팀을 상대로 한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지난 6월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는 브라질의 전방 압박에 빌드업이 무너지며 1대5로 대패했다. 또 다른 인사는 "월드컵 본선에서 우루과이, 포르투갈도 우리의 빌드업을 차단하기 위해 강한 전방압박을 구사할 것"이라며 "빌드업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한 '플랜B'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정 선수들을 계속해서 기용하다 보니 상대팀에 전략이 쉽게 분석될 수 있고 이들이 부상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팬들의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2002년, 2010년과 끊임없이 비교되는 것도 벤투 감독으로선 부담이다. 축구계 한 인사는 "히딩크 감독도 벤투만큼 고집과 신념이 대단했지만, 여러 전술을 준비해 유연하게 대응하고 대표팀 선수들을 월드컵 직전까지 경쟁시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며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뤄낸 2010년에는 허정무 감독이 선수들과 격의 없이 전술에 대해 끊임없이 상의하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이 지금의 비난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적지 않다. 한 인사는 "현재 벤투 감독은 지난 4년간 대표팀을 '원팀(One team)'으로 만들었고 선수들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받는다고 들었다"며 "역설적으로 부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술이나 선수 선발에 일관성을 지킨 게 그 요인"이라고 말했다. 여론과 팬들의 압박에 굴복해 전술을 뒤죽박죽 바꾸거나 선수 선발에 일관성을 지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벤투가 선수 기용의 폭을 좁게 가져가는 것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전문가는 "매번 월드컵 엔트리는 23명이었지만, 실제 경기에 나서는 건 주전 11명과 교체 투입되는 3~4명 정도"라며 "벤투 감독이 일찌감치 자신의 전술에 맞는 핵심 멤버를 정하고 이들을 경기에 최대한 많이 기용해서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선수를 넓게 쓰기보다 깊게 쓰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벤투 감독이 교체 선수로 나상호와 엄원상 등을 중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강인 같은 기술적인 선수보다 스피드가 좋은 선수들이 조커로서 더 효과적이란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었다.

다만 벤투 감독이 여론과 팬을 대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다수였다. 한 전문가는 "모든 프로 스포츠는 팬이 가장 중요하다. 팬들에게 자신의 결정과 신념을 다 밝힐 순 없더라도 최대한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한과 책임 쥔 감독이 결과로 증명해야"

전문가들은 "결국 이 모든 논란을 잠재우려면 감독이 결과로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벤투 감독에게 우호적인 한 전문가는 "벤투의 결정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똥고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 이강인은 카타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까. 전망은 엇갈렸다. 한 축구계 인사는 "벤투 입장에서는 월드컵 출전 멤버를 거의 확정한 데다 수비가 중요한 월드컵의 특성상 수비력에 약점이 있는 이강인을 중용하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전문가는 "이번 시즌 이강인은 수비 가담이나 체력, 스피드 등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이 보완됐다"며 "이강인이 가진 기술과 공격력은 우루과이나 포르투갈 같은 강팀을 상대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월드컵에 가려면 선수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선수 출신 한 인사는 "벤투 감독의 고집이 먹혀든다는 건, 역설적으로 오래전 축구 대표팀 감독들이 선수 선발에 갖가지 외압을 받았던 후진적 관행이 사라졌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현재로선 이강인이 더 좋은 실력으로 벤투의 선택을 받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기고자 :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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