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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투성이 축구 용어
고민 빠진 중계진 속내

"여보, '빌드업'이 뭐야? '홀딩' '키패스'는 또 뭐고?"

주부 윤모(34)씨는 지난달 가족과 함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시청하다가 당혹했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말하는 생소한 축구 용어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씨는 "중계진이 계속해서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쓰니 나 같은 '축알못(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축구 중계도 보지 말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카타르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경기 중계를 맡은 방송사 캐스터와 해설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평소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지만 월드컵 등 큰 경기는 지켜보는 일반 시청자와, 손흥민이 활약하는 EPL을 비롯해 라 리가, 세리에A 등 해외 유명 축구 리그를 찾아 보는 축구 마니아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축구 해설위원은 "일반 시청자들을 감안해 쉽게 해설하면 축구 마니아들이 '저 해설위원은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공격하고, 마니아 눈높이에 맞춰 해설하면 '해설자가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많이 쓰느냐'는 불만을 접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간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고민이다. 스포츠 과학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야가 발전하고 이들이 축구와 접목되면서 축구 역시 빠른 속도로 전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설위원은 "최근에는 전술도 워낙 다양해진 데다 같은 포메이션이라도 포지션별로 선수들 역할이 다양해져서 쉽게 설명하는 데에도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해설위원은 "당장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빌드업'만 해도 막상 풀어서 설명하려면 말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계진은 "쉽게 설명하는 것이 '무지'로 비치는 상황도 답답하다"고 했다. 한 해설위원은 "쉽게 해설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축구 마니아들의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이 축구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설자에 대한 평판을 관찰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축알못'이라고 오해를 사면 경력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선수 출신인 한 해설가는 "처음 해설을 맡았을 때 쉽고 재미난 표현을 많이 썼더니 '축알못'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더라"며 "발끈해서 작정하고 전문적 해설을 시도했더니 이번엔 캐스터와 방송사가 말렸다"고 말했다.

캐스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축구 전문 캐스터는 "월드컵은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시청자 관심을 끌기 위해 '한국이 16강에만 진출하면 스위스와 대결해서 8강까지 가 볼 만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말도 하게 되는데, 이런 말이 축구 마니아들에게는 '저 캐스터는 축알못'이라고 공격받기 딱 좋은 것"이라고 했다. 방송인 겸 캐스터 김성주씨는 "지금은 일반 시청자가 많이 보는 한국 대표팀 경기는 가능한 한 쉽게, 그 외 경기는 마니아들 시선에 맞춰서 좀 더 전문성이 있는 중계를 하는 쪽으로 해설자들과 조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설자 대부분은 "일반 시청자들이 축구가 가진 전문성을 좀 더 존중해주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현실적으로 월드컵은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가능한 한 쉽게 중계해야 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한다"며 "축구도 물리학이나 경제학처럼 전문 분야의 하나기 때문에 이를 우리 사회 전반이 수용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 '축알못'을 위한 축구 용어 뜻풀이 기고자 :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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