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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도 잘 모르는구석구석 원주 탐험

"내가 짝대기 하나 들구서 뱀을 7년 잡고, 또 복령(소나무 뿌리의 혹)을 5년이나 캐고… 이 막막한 산골에서 새끼들 멕이고 키우느라 안 해본 게 없어. 무서운 게 어딨어, 그저 내 새끼들 입에 밥 숟가락 넣어줄 수 있는 일이면 다 했지. 내가 올해 팔십너이(84)인데 이 핵교 정문 옆에 살았어도 댕겨본 적은 없드랬어. 그래도 아들 딸은 모두 이 핵교 나와서 영월로, 원주 시내로 중·고등핵교까지 잘 댕겼지 뭘~"

서월이(84) 할머니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등교'한다. 1949년 개교해 1998년에 폐교한 이 학교엔 출석을 부르고 글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함께 놀아줄 동무도 없지만, 전시실로 꾸민 옛 교실에 들어서면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흐르고, 한평생을 자신처럼 화전 일구고 살아낸 이웃 '할매'들의 삶이 작품이 되어 맞이한다. 지난 9월 '할매발전소'란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옛 황둔초교 창평분교 얘기다.

폐교에선 이 지역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전시 '알아차림 전(田)'이 열리고 있다. 할머니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비롯해 할머니들이 직접 내레이션을 하거나 참여한 작품 20여 점이 기다린다. 'K할머니'가 '대세'로 떠오른 시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베고 누웠던 할머니 무릎이 그리워진 걸까. '할매발전소'를 시작으로 이 가을 놓치면 아쉬울 원주의 힐링 공간들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산골 폐교의 화려한 변신

'강원도는 감자바우라고 하는데 여기는 다 옥수수바우여' '내 마음의 밭이 있다면 나는 우리 아들, 우리 딸을 심었지' '영복아, 할머니가 무말랭이 해서 보낼 테니 아침들 잘 먹고 회사 잘 다니고 그래라'….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건 할머니들의 입말. 어법이 틀리고, 표현이 서툴러도 채록한 말 그대로 옮겨다 놓은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니 눈가가 촉촉해진다. 잊고 지냈던 할머니들의 당부와 그리운 잔소리 열전. '글씨 쓰는 거 하고 싶은데 남동생들 하는 거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른들이 못 보게 했어.' 조계화(85) 할머니의 고백에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끄덕. 지난달 1일 시작한 할매발전소의 '알아차림 전'이다.

산골 분교였던 학교의 복도를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장독대부터 만난다. 정화수 떠놓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던 할머니의 마음을 재현한 작품 'it 's YOU'다. 대접 안을 들여다보면 물을 담은 그릇에 관람객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전시를 기획한 '로컬리티' 김영채 대표는 "관람객뿐 아니라 정화수 떠 놓고 기도하는 할머니 당신 또한 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에 응답한 존재라는 걸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입구에 걸어놓은 '금줄'을 지나면 작품 '1년, 66795일'이 기다린다. 하루를 하나의 줄, 하나의 구슬로 표현해 꿰어가다 보면 전체 365줄, 6만6795알이 누적되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평생 화전민으로 척박한 땅 일궈 밭일만 하면서 보낸 이야기는 '기억의 파편' 소재가 됐다. 밭에서 주운 쓰레기를 마치 과학실 표본처럼 박제해둔 작품. 이어지는 천장엔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수퍼맨' 조각보가 매달려 있다. 김 대표는 "세상 모든 어머니는 수퍼맨, 수퍼우먼 같다는 것에 영감을 얻어 거룩한 어머니의 마음을 보듯 우러러보게 한 게 포인트"라고 했다. 할머니들 쓰던 팔각 모반을 탑으로 쌓아올린 작품도 있다.

할머니와 함께 춤을!

두 평 남짓한 '영감의 공간'은 LED 광섬유와 효과음 등을 활용해 옥수수밭으로 연출했다. 옥수숫대가 흔들리고 바람 소리가 들린다. 천장은 밤하늘처럼 별 조명이 빛나고,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평생 옥수수밭에서만 살았다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은 몰입형 작품이다. 전시의 마지막 코스인 '퍼블릭 공간'은 '마고 무도장'으로 꾸몄다. 노인 세대의 콜라텍과 무선 이어폰 끼고 춤추는 젊은 세대의 '사일런트 디스코'를 접목한 공간으로, 헤드폰 속 현란한 EDM 음악과 함께 할머니들의 막춤 퍼레이드가 미디어아트로 흐른다. 꽃무늬 옷, 뽀글뽀글 '빠마머리'로 한껏 멋을 낸 할머니들의 댄스 파티다. "마을에서 관광 가면 버스에서 신나게 췄지. 앉을 새가 어딨어? 무르팍이 아프건 말건 이렇게 흔들어 때리지! 그때 아니면 언제 춤을 추겄어. 추라면 추지 뭐!" 서월이 할머니의 '80년 절친' 조계화 할머니는 미디어아트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바나나'로 유명한 풍자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을 신림면 특산품인 옥수수로 바꿔 패러디한 '코메디 우먼', 어린 시절 배앓이할 때 아픈 배 쓰다듬어주던 할머니의 손길을 추억해볼 수 있도록 연출한 '몸짓을 부르는 벽'도 색다르다. 김영채 대표는 "'알아차림 전'은 코로나를 거치며 깊은 공감과 위안이 필요한 시기에 내 마음을 알아차려 주던 할머니의 밥상에서 출발했다"며 "할매발전소 역시 이름처럼 할머니들이 문화의 주체가 되는 공간으로 꾸며나갈 것"이라고 했다. 11월 27일까지 금~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 관람.

'신들의 숲'에 숨은 명소들

'원주의 가을' 하면 노랗게 물든 '반계리 은행나무', '치악산국립공원' 단풍길, 원주 제1경 '구룡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할매발전소가 있는 남서쪽 신림면에는 아는 이들만 조용히 찾는 곳이 있다.

할매발전소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성남리 성황림은 1년에 딱 두 번,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황제(음력 4월 8일과 음력 9월 9일) 올리는 날에만 열리는 '비밀의 숲'이다. 치악산 국립공원 천연기념물 93호로 지정돼 있는 이곳은 온대 낙엽 활엽수림을 중심으로 200여 종의 보호식물과 야생동물이 어우러진 숲이어서 보존 가치가 크다. 평상시에는 마을 공동체 '성황림마을' 등을 통해 사전 문의 후 인솔자 동행하에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하기도하나 사실상 성황제 때에 한해 일반 개방한다.

'서마니강(주천강)' 따라 걸어보는 치악산둘레길 5코스(10.4㎞, 3~4시간 소요)는 숲길 트레킹을 하기 좋다. 그 옛날, 송계·황둔 마을에서 안흥장을 보러 갈 때 만나는 첫 고개라 해서 이름 붙여진 '초치'에서 송계리까지는 자작나무, 소나무, 낙엽송 등이 어우러진 숲길이 이어진다. 황둔찐빵 거리도 지나칠 수 없다. 폭신한 쌀찐빵 한 개 입에 물고 '천원의 행복'을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할매발전소에서 차로 5분 거리엔 명주사 고판화 박물관도 있다. 호젓한 길을 따라 오르면 왼쪽에 명주사, 오른쪽에 고판화 박물관이다. 2004년 문을 연 고판화박물관은 한선학 관장이 한·중·일, 티베트, 몽골, 인도, 네팔 등지에서 수집한 고판화 들을 소장한 곳. 박물관에선 올해 말까지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동아시아 민화의 뿌리-중국 연화 특별전'을 연다. 연화(年畵)는 새해에 복을 기원하며 대문이나 벽 등 집 안 곳곳에 붙였던 그림. 이번 전시에선 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연화와 목판 중에서도 최근 5년간 수집한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다.

청나라 초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조도, 초충도 6폭 병풍이 이번 전시의 '메인'이다. 한 관장은 "초충도는 목판으로 테두리를 찍은 후 색을 입힌 '판인필회(版印筆繪)' 기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원형의 건물, 원형의 무대

고판화 박물관에서 고판화의 매력을 엿봤다면 뮤지엄 산으로 가 현대 판화 작품들을 감상해볼 만하다. '일상_Layer'전이 기다린다. 13명의 작가가 목판, 동판, 실크스크린, 콜라주 등 다양한 판화 기법으로 표현해낸 판화 68점이 '위로' '휴식과 즐거움' '경계'라는 주제로 관람객과 만난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 평가받는 곳이다. 야외 조각, 플라워 가든을 차례로 지나 알렉산더 리버만의 빨간색 아치웨이가 인상적인 '워터가든'은 뮤지엄 산의 포토존과 같은 곳이다. 종이박물관부터는 유료 관람 구역으로 입장권(성인 1만9000원부터, 청소년 1만1000원부터) 소지자만 들어갈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미학을 발견할 수 있는 건축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뮤지엄 산에서 나왔을 때 어스름 해가 지고 있다면, 가까운 오크밸리 리조트로 간다. 오후 7시부터 숲길 산책로에서 3D 라이팅쇼인 '소나타 오브 라이트'(성인 2만원)가 열린다. 울창한 숲, 골프장의 페어웨이를 배경으로 커다란 고래가 헤엄치는 조명쇼가 펼쳐진다. 간현관광지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야간 관광코스인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는 10월 한달간 무료 개장한다. 당일 선착순 관람.

뮤지엄 산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유알컬처파크도 건축 여행 코스에 넣어볼 만한 공간이다. 전체 3만6000㎡(1만1000평) 규모의 공간은 원형의 건물 안에 원형의 무대를 품은 형태다. 소리 건축가이자 자연주의 건축을 지향하는 이형호 대표가 그 어떤 음향 장비도 없이 건축물의 공명 현상만으로 공연이 가능하게 설계한 '언플러그드 공연장'이 있다. 이 대표는 "서양의 극장 문화가 아닌 우리 전통의 마당 문화를 재현하는 공간을 생각했다"며 "뮤지션들의 연주와 목소리, 원음을 느낄 수 있도록 철저하게 계산해 소리를 건축만으로 낼 수 있게 구현했다"고 했다. 누구라도 무대 중앙에 서서 소리를 내보면 깜짝 놀란다. 스피커나 마이크 없이도 소리가 크고 깊게 울려 퍼진다. 무대에선 다양한 공연, 마켓이 열린다. 1층 카페 이용객들은 커피나 음료를 한잔하며 공연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단풍 드는 치악산 보며 더덕구이에 옥수수막걸리 한잔할까?]

'할매발전소' 주변 맛집

'할매발전소'를 기획한 '로컬리티'의 김영채 대표가 추천한 신림면 소롯길은 젊은 채식가들 사이에서 조용히 소문난 카페 겸 식당이다. 전통 차와 함께 산채비빔밥이나 더덕구이를 맛보려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해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 산채정식인 소롯길 정식(1만2000원)이나 더덕구이정식(1만2000원)을 주문하면 직접 담근 오디청을 넣은 샐러드, 누룽지탕수를 시작으로 된장찌개와 나물 반찬이 한 상 가득 채운다. 약선요리처럼 정갈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속이 편하다. 매주 수요일 휴무.

구룡사 방향 주차장 부근에도 비룡상회를 비롯해 선달·원일·부흥상회 등 산채밥, 더덕구이 등을 내세운 '가맥(술과 식사가 가능한 수퍼)'풍 식당들이 모여 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간단히 식사할 수 있어 부담 없이 찾는 분위기다. 도토리묵, 해물파전에 옥수수막걸리 한잔하다 눌러앉을지 모르니 주의할 것!

치악산과 감악산이 감싼 송계리 황둔막국수는 1963년 개업해 3대째 이어오는 메밀막국수 맛집이다. '투박하면서도 메밀향이 살아있는 면발부터 즐긴 뒤 기호에 따라 양념을 추가해 맛보시라'는 안내문과 함께 맛있게 먹는 양념장 비율이 적혀 있다. 그대로 따라 하면 보다 맛있는 황둔막국수(9000원)를 맛볼 수 있다. 매주 목요일 휴무.

지정면 스톤크릭은 '수리봉 절벽 뷰 맛집'이라고 소문난 카페다. 야외 마당으로 나가면 수리봉이 우뚝 솟아 있다. 깎아지른 듯한 웅장한 절벽을 마주하고 펄 밀크티(7500원) 한잔 맛보며 쉬어갈 수 있다. 절벽을 배경으로 심어 놓은 '나 홀로 나무'는 인생샷 명소로 인기다. 뮤지엄 산 내 카페 테라스는 가을이면 테라스에 편히 앉아 발아래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덕에 야외석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코코넛 열매 속 코코넛 아이스크림(1만원)이 별미다. 에스프레소 7000원부터. 매주 월요일 휴무. 기고자 : 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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