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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도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은 한국 차지일 것＂ (英 더타임스 음악 평론가)

"만약 클래식 음악에도 올림픽 금메달이 존재한다면 어떤 나라가 정상에 오를까?"

올해로 30년째 영국 더타임스의 음악 전문 기자로 재직 중인 리처드 모리슨이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모리슨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00년사를 정리한 책을 펴낸 세계적 음악 평론가다. 그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현장 취재 당시 성악·바이올린·피아노 등 전 분야에서 한국 참가자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전하면서 "단연 한국일 것"이라고 꼽았다.

그가 언급했던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바로 2011년 대회다. 당시 한국은 소프라노 서선영과 베이스 박종민이 남녀 성악 부문에서 모두 우승하고, 피아노 부문에서도 손열음·조성진이 나란히 2~3위에 올랐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역시 3위에 오르며 참가자 5명이 대회 주요 부문에서 동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모리슨은 "'한국 음악가들은 테크닉은 훌륭하지만 감정이 부족하다'는 낡은 인종차별적 허튼소리(nonsense)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는 테크닉과 스타일, 열정을 모두 겸비했다"고 단언했다.

모리슨의 칼럼처럼 '클래식 종주국'인 유럽에서도 한국 클래식의 눈부신 비상(飛上)은 뜨거운 화두다. 흔히 쇼팽·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대회가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다. 이 대회에서 26년째 현장 중계를 맡고 있는 베테랑 감독인 티에리 로로(64)는 한국 클래식의 부상(浮上)을 주제로 아예 2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지난 2012년 첫 다큐멘터리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에 이어서 최근에는 후속편에 해당하는 'K클래식 제너레이션'을 제작했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 소속인 그는 브뤼셀 음악원에서 오보에와 음악학을 전공했고 투츠 틸레만(하모니카) 같은 음악인에 대한 다큐 40여 편을 연출했다.

지난달 다큐 개봉을 맞아서 방한한 그는 "과거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연주자들이 테크닉만 뛰어날 뿐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최근 등장한 'K클래식' 세대는 열정과 본능, 에너지와 표현력까지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모리슨이나 로로 감독의 말처럼 10~20대 한국 젊은 연주자들은 이미 '테크닉 기계'를 넘어섰다는 것이 공통적인 진단이다.

때로 'K클래식'이라는 수식어는 국내 음악계에서도 지나친 '국뽕(맹목적인 자국 찬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교향악의 완성지인 독일이나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뿐 아니라 러시아(차이콥스키)·프랑스(드뷔시와 라벨)·영국(엘가)도 연주자보다는 작곡가 중심으로 음악적 국적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로 감독은 최근 한국 연주자의 국제적 부상을 빗대서 'K클래식'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그는 "지난 12개월 동안 몬트리올·부조니·퀸 엘리자베스·반 클라이번 등 4대 대회에서 우승한 연주자들이 모두 한국인이며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고 주문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해 몬트리올 콩쿠르(피아니스트 김수연), 부조니 콩쿠르(박재홍),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임윤찬)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첼로 최하영) 우승자들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영재원)에서 공부한 뒤 한예종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픽 참조〉

그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체계적인 영재 교육 시스템, 부모들의 헌신적 지원 등 세 가지 요소를 K클래식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경제 성장과 가족주의의 결합은 2차 대전 이후 한중일(韓中日) 등 동아시아에서 시차를 두고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거기에 한국은 엘리트 음악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예종에서 음악 신동의 재능을 조기 발굴하고, 금호영재콘서트 같은 무대를 통해서 이들의 기량을 꾸준하게 소개하고 점검하는 방식이다.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015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서 데뷔했다. 2020년 예원학교(중학교 과정)를 졸업한 뒤 이듬해 한예종에 입학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예종 총장은 "실전 경험이 없는 교육은 그만큼 현장과 유리되기도 쉬운데, 한국 음악계는 이론과 실기라는 양 분야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정상에 오른 한국 음악인들을 보면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선 예전에는 한국이 피아노·바이올린·성악 분야에서 강국으로 꼽혔다면, 최근에는 상대적 약세로 평가됐던 목·금관 분야에서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독일 최고 권위의 ARD 콩쿠르에서 우승한 플루트 연주자 김유빈(25)이 대표적인 경우다.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16세에 프랑스 리옹 음악원에 들어간 전형적인 '영재 연주자'다. 2014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이듬해인 2015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 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다. 김유빈뿐 아니라 오보에 함경·클라리넷 김한(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클라리넷 조인혁(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바순 유성권(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호른 김홍박(오슬로 필하모닉) 등 해외 명문 악단에서 활동하는 관악 연주자들도 크게 늘었다.

마찬가지로 성악 분야에서도 조수미·신영옥·홍혜경 등 '3대 소프라노'뿐 아니라 최근에는 바리톤 김기훈과 베이스 박종민 등 남성 저음 음역까지 다변화하고 있다. 실내악 역시 노부스 4중주단(2012년 ARD 콩쿠르 2위), 에스메 4중주단(2018년 영국 위그모어홀 콩쿠르 1위), 아레테 4중주단(지난해 '프라하의 봄' 콩쿠르 1위)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한국은 독주(獨奏)만 강하다'는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있다. K클래식의 세계 도전은 사실상 전 분야에서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세계 음악계 분야별 강국]

지휘는 핀란드, 음악 교육은 중국이 강세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登龍門)인 콩쿠르에 한정하면 확실히 한국은 금메달을 싹쓸이할 공산이 높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는 콩쿠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해외 클래식 전문지에서는 종종 분야별 '메달 수상국'을 점치는 가상의 음악 올림픽을 열기도 한다.

어린이 음악 교육 분야에서는 단연 '인해전술(人海戰術)'의 중국이 최강국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만 4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인기 피아니스트 랑랑 역시 예전 본지 인터뷰에서 "내 등 뒤에서 수천만 명의 아이들이 뒤쫓아 오고 있다. 그 숫자는 매년 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남미 베네수엘라 역시 최근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음악 교육 분야에서는 강국이다. 1975년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 호세 아브레우(1939~2018)가 주창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인 '엘 시스테마'를 통해서 수십만 명이 방과 후 오케스트라 교육을 받고 있다.

전문 지휘자 양성에서 남다른 경쟁 우위를 보유한 선진국은 러시아와 핀란드다. 러시아는 구(舊)소련 시절부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통해서 수많은 거장들을 양산했다.

핀란드 역시 인구 550만명의 소국이지만 명문 시벨리우스 음악원을 통해서 에사 페카 살로넨(샌프란시스코 심포니) 같은 명지휘자들을 배출했다. 최근 26세의 나이로 네덜란드 명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차기 감독으로 지명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역시 핀란드 출신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서울시향(오스모 벤스케)과 KBS 교향악단(피에타리 인키넨)이 모두 핀란드 지휘자들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래픽] 최근 국제 콩쿠르 정상에 오른 K클래식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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