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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에 한 번 병원에 간다. 정신과다. 나는 몇 년 전 우울증을 겪었다. 지금은 완치 상태지만 그래도 석 달에 한 번 의사를 만난다. 대화는 별거 없다. "잘 지내죠?" "네. 잘 지냅니다" "잠도 잘 자죠?" "밤에는 마감을 해야 하는데 너무 잘 자서 큰일입니다" "그래도 약은 끊지 말고 서서히 줄여갑시다". 사실 지금의 나는 약을 끊어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의사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환자다.

우울증 이야기 하는 걸 어머니는 싫어하신다.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탓이다. 어머니는 이 칼럼도 싫어하실 것이다. 어쩌겠는가.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이 그렇다. 남의 이야기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자기 삶의 조각들을 파내어 글로 팔아먹는 직업이다. 내 병이라도 팔아서 재미있는 글을 써내는 것이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의무다.

많은 우울증 환자는 자주 병원을 바꾼다. 자신과 잘 맞는 의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병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증을 겪던 시절 네 번 병원을 바꿨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공감을 잘해주는 의사보다는 단호한 의사가 맞았다. 나를 완치시킨 의사는 미소 한번 짓지 않는 분이었다. 눈도 잘 쳐다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진단이 빨랐다. 정확했다. 단호했다. 나는 그게 믿음직스러웠다. 나에게 필요한 건 감응해주는 눈빛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나는 음식 배달 앱을 종종 이용한다. 클릭하면 먼저 뜨는 건 별점과 평가다. 대부분의 악평은 음식의 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랑 같이 먹는다고 썼는데 너무 매워서 별점 하나 빼요" "전화로 추가 주문 했는데 목소리가 불친절했어요". 네이버에서 병원 정보를 클릭하면 역시 먼저 뜨는 건 별점이다. 별점이 낮은 병원은 대개 이런 악평이 붙어있다. "의사가 불친절해요" "간호사들이 너무 기계적으로 응대합니다". 이걸로는 의사가 명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소셜미디어로 모두가 모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모두가 서로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병원이든 식당이든 평가의 기준은 실력이 아니라 대개는 태도다. 이제 우리는 정치에서도 태도만을 읽어낸다. 정치인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더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얼마나 내 처지에 공감하는 글을 자주 올리는가가 가장 강력한 지지 이유가 됐다.

오늘도 당신은 실력 있는 의사보다는 경청하고 함께 울어주는 의사를 찾아 헤맬 것이다. 능력 있는 정치인보다는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게시물을 올리는 정치인을 따를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병과 삶을 빠르게 고칠 수 있는지 더는 중요하지 않다.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 남은 것은 믿을 수 없는 별점과 헛된 공감의 언어다. 식사는 없어 배고파도. 음료는 없어 목 말라도. 달콤한 맛만 공감의 맛만 원하게 될 거 알잖아. 기고자 :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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