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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재즈 역사' 실라 조던, 첫 내한 인터뷰

"내년 여기서 날 다시 보면 알게 될 거야. 내가 여전히 괜찮다는 걸~".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연상케 하는 똑단발에 검은 매니큐어. 지난 2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94세 현역 재즈 보컬리스트 '실라 조던'<사진>은 그가 거쳐온 긴 세월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탄탄한 뱃심으로 잘 관리된 미성을 카랑카랑하게 밀어 올렸고, 노련하게 끝 음을 처리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즉흥 가사로 관객을 연신 웃겼다. 노인이라기보단 애늙은이 소녀와 같은 모습.

공연 직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에게 "90대에도 현역으로 노래하는 건강 비결"을 묻자 "오 자기, 비법 같은 건 없어. 그냥 음악이 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지"라며 손을 내저었다.

'실라 조던'은 국내 대중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이번이 첫 내한 공연. 하지만 해외에선 전설적 재즈 색소폰 연주가 '찰리 파커(1920~1955)가 인정한 백만불짜리 귀'이자 '걸어다니는 재즈 역사책'으로 유명하다. 실라가 10대 시절 재즈 보컬 트리오로 공연하던 디트로이트의 한 클럽에서 우상과도 같았던 찰리 파커를 만났고, 우연히 함께 노래한 뒤 그가 말했다고 한다. "꼬마야, 너는 백만 달러짜리 귀를 가졌구나."

이후 그 꼬마는 유서 깊은 재즈 음반사 블루노트에서 1963년 음반 '실라의 초상화'로 재즈계에 데뷔했다. 2012년 미국 연방예술기금(NEA) 재즈 마스터 상을 받았고, 지난해까지 미국, 스페인, 독일 등을 돌며 활발히 세계 투어 공연을 이어왔다.

실라는 "백만불짜리 귀의 탄생까지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 했다. 17세 미성년 엄마 대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가난한 탄광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난방은커녕 수도 시설도 없어 우물을 길어다 썼고, 쫄쫄 굶는 게 일상이었다. 배고픔을 잊으려 세 살 때부터 택한 게 '노래'. 재료는 할아버지가 가까스로 전기 요금을 낸 달에만 재생되던 라디오 속 재즈 소리였다. "목화 따는 노예들의 노동요였던 재즈의 시작과도 묘하게 닮았죠(웃음)."

고등학교 때 동네 클럽 주크박스에서 우연히 듣게 된 찰리 파커의 노래는 그에게 "재즈에 평생 헌신하겠다"는 꿈을 품게 했다. 졸업 후 무작정 뉴욕으로 건너가 찰리 파커를 쫓아다녔고, 그러다 재즈 보컬이 됐고, 파커 그룹의 피아니스트와 결혼까지 했다. 그 피아노맨이 바로 한국에서는 재즈 명반 '플라이트 투 덴마크(1973)'로 이름이 알려진 듀크 조던이다.

하지만 10년 결혼 생활 끝에 30대에 이혼한 실라에겐 다시 가난의 꼬리가 따라붙었다. 딸을 혼자 키우느라 마이크 대신 타자기를 붙잡고 기록 보조원으로 오래 일했다. 가까스로 50대가 다 되어서야 재즈 클럽 무대로 돌아왔을 땐 알코올중독이란 가족력이 그를 괴롭혔다. "저희 엄만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죠. 정신 차려보니 나 역시 술에 절어 있었고요." 결국 스스로 알코올중독 치료 센터에 입소했고, 이후 "30여 년째 술 한 방울 입에 안 댄다"고 했다.

실라는 활동 초기부터 뉴욕의 자택을 '재즈인들의 쉼터'로 만들었고, 즉흥 연주의 대가들과 깊은 교류를 나눴다. 이 집은 그때쯤 실라의 우상에서 '친우'로 변신한 찰리 파커가 영감을 얻는 공간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미국 대표 재즈 피아노 거장 호러스 실버(1928~2014)가 이곳에 놓였던 낡은 피아노 두 대를 작곡에 쓰겠다며 가져갔고, 당시 그와 함께 곡 작업을 하고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못생긴 피아노를 어디서 가져왔어."

친우들처럼 실라의 주특기는 보컬리제(보컬을 이용한 즉흥 연주). 해마다 그의 같은 공연을 본 팬들도 매번 "다른 공연을 봤다"고 말하는 이유다. 무대 위 그날의 기분, 옷차림, 날씨 등이 모두 가사가 된다. 실라는 특히 80년 동안 이어온 재즈에 대해 "이제는 내 심장"이라고 했다. "나는 내 영혼과 심장에서 소리를 뽑아 올려요. 그걸 관객들이 알아들을 때 짜릿하고, 살아있다 느낍니다." 기고자 :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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