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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포레스트 갠더―韓 김혜순 대담

"최돈미 시인, 제 딸과 샌프란시스코 교회를 지나 갠더의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 밤 낭독회에서 갠더는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줬다. 이번엔 갠더가 멀리서 온 손님이니, 그가 더 많은 시간 동안 말하도록 '복수'를 단행하겠다(웃음)."

시인 김혜순은 3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미국 시인 포레스트 갠더에게 농담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지난 23일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 강연에서 만난 두 시인은 '시'로 맺어진 오랜 친구 같았다. 2019년 각각 그리핀 시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한미 시인이 그동안의 시작(詩作)과 시의 역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갠더 시인의 방한은 2019년 서울국제작가축제 이후 3년 만. 그는 "김혜순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시인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시를 써 온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 시인은 시집 '죽음의 자서전'(2016)으로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고 1주일 뒤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지난 4월 모친의 부재 상태를 딛고,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을 냈다. "비탄이 제게 침묵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연대하는 게 시인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비탄에 빠진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걸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갠더 시인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김 시인의 말에 화답했다. 그가 퓰리처상을 받은 시집 '함께하다(Be With)'는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을 담고 있다. "아내가 죽은 뒤 1년 반 동안 슬픔에 빠져 글을 쓰지 못했다. 비탄이라는 감정은 표현하기에 적합한 언어가 없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야 그 감정을 소화할 수 있다. '함께하다'를 본 분들이 '나의 감정을 잘 대변해줬다'며 편지를 보냈다. 이처럼 복잡한 감정적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언어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수정하고,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요즘엔 시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김혜순의 시는 그 역할을 해 준다."

두 시인은 특히 시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갠더 시인은 "시의 언어는 투명함과 밀도, 출현과 사라짐의 연출 사이에서 이뤄지는 에로틱한 긴장이다"라며 "최근의 시들은 비유적인 표현을 최대한 덜어내고, 제가 천착하는 중심적 의미에 긴밀하게 들어갈 때만 비유를 쓰고 있다"고 했다. 김 시인은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를 냈을 때, '제목이 무슨 말이냐'는 질문에 '달'이란 단어는 한국어에서 '딸'과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모두 시집을 '엄마가 죽으면 딸은 누굴 따라다니지'라고 단순하게 해석하더라. 그런 해석이 반갑고 재미있지만, (시의 언어는) 일차원적으로 해석하긴 어렵다."

갠더 시인은 이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어, 생태계 전체와의 연대를 꿈꾼다. 나무, 바위 등 습한 곳에서 사는 지의류(地衣類·균과 조류생물의 복합체)를 소재로 최근 시집 '두 배의 생(Twice Alive)'을 냈다. "글을 쓸 때 인간이 모든 생물종의 최상위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통제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 한다. 우리 위장 속에서 미생물들이 음식 소화를 돕고 있듯, 모든 생물은 상호적인 존재다. 당면한 생태학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인간도 다른 생물로 이뤄진 존재라는 사고방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두 시인은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주제이기도 한 '월담'을 가능케 하는 것이 '번역가'라고 말했다. 갠더 시인은 "'죽음의 자서전'을 비롯해 김혜순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번역가 최돈미에게 감사한다. 번역가들이야말로 언어와 타자라는 담을 넘게 해서,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준다"고 말했다. 문학의 장르, 언어 사이의 벽을 넘는다는 뜻의 '월담'을 주제로 한 국내외 작가들의 대담은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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