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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콰이어트 퀴팅(조용한 퇴사, 과중한 업무와 거리두기)' 확산… "최소한 업무만 한다, 칼퇴 후 건드리지마"

    김지섭 기자

    발행일 : 2022.09.23 / W-BIZ B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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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이후 번지는 '소극적 업무관'

    대기업에 다니는 6년 차 직장인 이모(32)씨는 평소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를 칼같이 지키며 산다. 회사에서는 점심 식사나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업무에 집중하되, '칼퇴' 후에는 이메일과 업무용 메신저에 일절 접속하지 않는다. 대신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배우고, 가족·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이씨는 "입사 초기엔 주말 근무를 할 만큼 열성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며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회사와 분리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 직장인들 사이에서 과중한 업무와 거리를 두는 이른바 '콰이어트 퀴팅(Quiet quitting·조용한 퇴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콰이어트 퀴팅은 정해진 업무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 소극적 업무관(觀)을 뜻하는 말이다. 실제로 사표를 내진 않았지만, 언제라도 짐 쌀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 7월 자이드 칸이라는 미국 뉴욕의 20대 엔지니어가 콰이어트 퀴팅에 대해 소개하는 감각적인 쇼트폼 영상을 틱톡에 올렸고, 이후 큰 호응을 얻으면서 해당 용어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2개월 만에 조회수 360만회를 기록한 영상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고, 이후 미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이 심층 기사를 내놓으며 사회적 현상으로 부각됐다.

    팬데믹 이후 확산된 '콰이어트 퀴팅'

    17초짜리 짧은 틱톡 영상으로 인해 최근 두 달 사이 콰이어트 퀴팅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었지만 이 용어가 올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2009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경제학 심포지엄에서 야망(ambitions)이 줄어드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때 처음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일에 '올인'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나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와 결이 비슷하지만, 직장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좀 더 강하다.

    최근 콰이어트 퀴팅이 주목받는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런 경향이 실제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갤럽이 지난 6월 미국 직장인 1만50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 절반은 자신이 맡은 업무 중 최소한만 소화한다고 답했다. 미 구인 사이트 '레주메 빌더'가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도 25~34세 근로자의 4분의 1이 콰이어트 퀴팅족임을 인정했을 정도다. 팬데믹 이후 중국 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탕핑주의도 일종의 콰이어트 퀴팅으로 여겨진다. '쓸데없이 노력하지 말고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자'는 생활 방식이다.

    低성장이 부른 MZ세대의 체념 전략

    콰이어트 퀴팅이 확산된 배경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은 장기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피로감이다. 인사 관리 기업 세지윅의 미셸 헤이 글로벌 최고인사책임자(CPO)는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다수가 겪고 있는 피곤, 좌절과 관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 구조적 변화에서 근본적 원인을 짚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직장인들은 노력에 따른 충분한 보상과 인정을 받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MZ세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콰이어트 퀴팅과 같은 '체념'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는 "1980~1990년대 고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에는 한 만큼 보상이 따르고, 성과를 인정받을 기회가 많았지만 Z세대들은 그렇지 않다"며 "한국 사회 특유의 꽉 막힌 조직 문화가 여전한 가운데 열심히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보다는 '나'를 위해 충성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콰이어트 퀴팅을 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여전히 불법적 업무 지시와 부당한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근로자가 많다고 보는 쪽에서는 콰이어트 퀴팅을 "법과 근로계약의 테두리 안에서 정해진 일만 수행하겠다는 근로자들의 정당한 요구"로 본다. 미국에서 미디어 컨설팅 기업을 운영하는 에드 지트론은 "콰이어트 퀴팅은 적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만큼 일하고 추가 의무를 지지 않는 것"이라며 "콰이어트 퀴팅을 타개하고 싶으면 초과 근무에 수당을 지급하면 된다"고 일갈했다.

    반면 콰이어트 퀴팅을 '월급루팡(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들이 근무 태만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세련된 용어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앤서니 클로츠 교수는 "콰이어트 퀴팅이 젊은 세대의 문화로 포장됐으나 일탈, 근무 태만, 업무 부실 등의 이름으로 수십 년간 존재한 트렌드"라고 일축했다.

    체념보단 변화가 낫다

    콰이어트 퀴팅족은 자신이 처한 여건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버티기 전략'을 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당히 일하며 남들과 비슷한 월급을 받고, 자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콰이어트 퀴팅은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체념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는 "일을 열심히 하면 스트레스만 늘고 받는 돈에 비해 손해 보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나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투자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당장 퇴사가 어렵다면 업무 시간 외에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체념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조언한다.

    기업들도 콰이어트 퀴팅을 단순 업무 태만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그들이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는 사내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의 올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45%, Z세대의 46%가 업무 환경으로 인해 '번아웃(극도의 정신적 피로나 무기력)'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서는 전 세계 직장인의 44%가 자신의 일에 불만족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콰이어트 퀴팅은 나쁜 직원이 아닌 나쁜 상사에 관한 문제"라며 "직원들은 자신의 에너지·창의성·시간·열정을 '자격이 있는 조직과 리더'에게 주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 연령대별 콰이어트 퀴팅족 비율 / 전세계 MZ세대의 업무관
    기고자 :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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