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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코로나 특수 끝나자 누적된 문제 드러난 게임업계

    곽창렬 기자

    발행일 : 2022.09.23 / W-BIZ B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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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탕 게임 주력하고 사행성 아이템 장사… 쉽게 돈벌려다 고객 잃어

    ▶B7면에서 계속

    이런 사업 모델이 성공하면서 게임사들은 국내에서 엄청난 매출과 이익 성장을 이뤄냈지만, 결과적으로 혁신에 게을러지는 부작용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직 대형 게임업체 간부는 “비슷한 스토리와 확률형 아이템 게임에 기반한 돈벌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했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인 국내 게임업체의 주요 신작 가운데 11개가 기존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대형 업체인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이 출시하는 4개의 게임 가운데 3개도 마찬가지다. 재탕·삼탕한 게임이 계속 쏟아지는 배경에는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대박을 친 원작의 인지도를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지고, 비용은 아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리니지’의 경우 1998년 최초 개발된 이후 리니지 시리즈로 나온 게임이 15개가 넘는다. 리니지는 지금까지도 엔씨소프트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된 ‘라그라로크’ IP(지적재산권)로 만든 게임이 35개가 넘고, 넥슨이 제작한 ‘바람의 나라’ ‘던전앤파이터’ 등도 수십 개의 비슷한 게임이 꾸준히 제작돼 왔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게임의 스토리와 구조도 비슷하다. 가령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뛰어든다→많은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들여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킨다→악당을 무찌른다→또 다른 악당이 등장해 다시 게임이 진행된다’는 식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배틀그라운드’ ‘던전앤파이터’ ‘로스트아크’ ‘서머너즈 워’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국에서 경쟁력이 없다 보니 대부분 게임사들은 국내 게이머들을 상대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 게임회사들이 집결한 판교에서 항의 시위가 빈발하는 건 게임사들의 돈줄 역할을 해온 국내 게이머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징후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서구 게임 이용자들은 ‘도박성 게임’에 거부감이 많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 모델로는 해외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확률형 아이템 게임이 최적화된 한국 시장에서 게임회사들이 악랄하고 사악하게 돈을 버니 해외 진출이나 새로운 게임 개발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게임을 잘 만들 필요도 없는 게 한국 게임산업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대해진 몸집에 인건비 천정부지

    일부 대형 게임업체의 경우 비대해진 조직도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직원 수가 2013년 1110여 명이었는데, 올해 6월 현재 4700여 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크래프톤은 2020년 1171명에서 올해 6월에는 1700여 명으로 600여 명 늘어났다. 과거 같으면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서둘러 아이디어를 채택할지 결정해 빠르게 게임을 내놨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면서 의사 결정이 느려지고, 우수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게임업체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던 A씨는 “신작 게임 아이디어가 통과되려면 팀장·실장·본부장·CEO 4개의 결재선을 거쳐야 하는데, 팀장·실장까지 허가가 났지만 본부장이 허가하지 않아 무산된 적이 있다”며 “내가 구상했던 것과 똑같은 게임을 나중에 다른 업체가 출시해서 큰 재미를 봤다”고 했다. 그는 “조직이 커졌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예전 같으면 무난히 출시돼 빛을 볼 수 있었겠다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게임회사들이 대기업이 되면서 설립 초기의 열정과 창의성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게임업체 간부 B씨는 “김택진·김정주 회장 같은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은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게임을 개발해 낼 정도로 치열했는데, 지금 그들은 모두 관료화된 대기업의 오너나 최고위직이 됐다”며 “이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후배 개발자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이미 게임업계는 조직이 너무 커졌고, 돈을 편하게 벌 수 있도록 짜여 있어서 치열하게 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대형 게임사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신작 게임 출시가 예정보다 늦어지거나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도 이런 조직 문화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엔씨소프트는 애초 신작 게임 ‘쓰론앤리버티(TL)’ 출시를 올해 하반기 목표로 했는데, 지난달 내년 상반기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게임 시장 환경이 좋지 않고, 파트너십 선정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이 발표가 나오자 주요 12개 증권사는 일제히 엔씨소프트 목표주가를 40만원대 수준으로 내려 잡았다. 이 밖에 ‘리니지W’와 ‘블레이드&소울2’의 해외 출시도 연기됐다.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출시한 모바일 게임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앤 소울2’는 혹평 속에 흥행에 참패했다. 넷마블이 4년 넘게 공들여 지난 7월 말 내놓은 신작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 레볼루션’도 구글 플레이 매출 1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훌쩍 커진 몸집은 인건비 증가와 실적 악화로도 이어진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게임업계는 앞다퉈 연봉 인상에 뛰어들었다. 몸집을 키우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넥슨이 전 직원의 연봉을 800만원 올린 것을 시작으로, 엔씨소프트는 개발직군 1300만원(비개발직군 1000만원), 크래프톤은 개발직군 연봉을 2000만원(비개발직군 1500만원) 인상했다. 이로 인해 국내 5대 게임사(크래프톤·엔씨소프트·넷마블 등) 직원 평균 임금은 2020년 7700만원 선에서 작년에는 약 1억2000만원(5대 게임사 기준)으로 급증했다. 급여총액도 6256억원에서 8684억원으로 38.8% 증가했다. 이로 인해 엔씨소프트의 올해 2분기 인건비는 작년보다 11% 증가한 2066억원을 기록했고, 카카오게임즈는 1분기 인건비로 작년보다 86% 오른 475억원을 썼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메타버스·블록체인 분야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데다, 개발직군 직원만 올려주면 비개발직군들이 반발하다 보니 연봉을 모두 다 올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조직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 대형 게임사는 최근 국내 한 인사 컨설팅 업체에 조직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자문했다. 이 업체는 2010년대 후반 내놓은 게임이 대박을 친 후 급격히 조직이 커졌다. 사람이 늘어난 만큼 조직이 정비돼야 하는데 조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을 중간에서 통솔할 관리자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없다 보니까 업무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직원들도 누구한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한국 게임업계가 위기를 맞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게임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데, 아직 리니지류의 게임보다 소비자가 더 좋아하는 게임이 없다는 것이다. 대형 게임업체 팀장급 직원 C씨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리니지류 게임 말고도 다양한 게임이 수없이 개발된다”며 “그럼에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게임업체 직원 D씨는 “게임업계에는 소위 서울대 나온 인재가 수두룩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만들어도 리니지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 아직 없다”며 “결국 게임 이용자들의 취향이나 기호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그래픽] INFOGRAPHICS / 흔들리는 K-게임
    기고자 :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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