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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돌고 나니] 얼마를 버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생각하니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발행일 : 2022.09.23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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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묵상 중에 있는 내게 한 형제가 불쑥 다가왔다. "목사님, 저 서울 다녀와야겠어요." "왜?" "만나고 싶은 사람 좀 만나고, 조카도 보고 싶어서요. 고향에 돈도 보내려고요."

    나는 걱정이 앞섰다. 나갔다가 서울역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것이 열 잔 스무 잔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사람이 그립다 하고, 자활보조비를 모았다가 고향으로 보낸다 하니, 어떻게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나. 그러나 고향 보낼 돈 몇 백만원을 술값으로 다 쓰면 어찌하나 걱정을 아니 할 수 없었다. 나는 순간 결단했다. 믿자! 삶이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책임지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께서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에 돌아오지 않았다. 부정적인 상상이 불안하게 펼쳐졌지만 하루 늦어 돌아왔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놀랐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온 것이다. 그는 몇 해 전 내가 만났을 때부터 수년간 머리를 등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지냈다. 그런 그가 머리를 깎다니. 내가 농을 걸었다. "서울 다녀오더니 새마을 지도자가 되어서 왔네." 그는 겸연쩍어하며 "그냥 깎았어요." 한다.

    늘 그렇다. 노숙에서 벗어나면 옆집 아저씨고 삼촌이 된다. 그는 고향에 돈도 보내고 돌아왔다. 나는 늘 이야기해 왔다. 얼마를 버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늘 수입보다 한 해가 끝나는 날, 얼마나 남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 날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삶이 끝난 이후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느 날 여유로운 시간에 한마디 한다. "목사님, 정말 고마웠어요." "뭘?" "지난번 찬양하던 날, 장로님들과 사모님이 나를 두 팔로 품어 주며 사랑한다고 하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는 이제 나를 걱정한다. 추석 연휴에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한 형제가 공동체에 남아 있었다. 귀가 어둡고 혼자 밥해 먹고 지낼 수 없는 처지여서 나는 그의 밥 때문에 먼저 공동체로 와야 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나의 아내를 만난 그 형제가 이야기를 했단다. "우리야 어떻게든 먹고 지내지만, 목사님이 어떻게 공동체에 가서 지내는지 걱정이에요."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그 형제는 공동체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하고 차를 대접한다. 며칠 전, 전현직(?) 노숙인으로 꾸며진 우리 교회 찬양대와 서울나눔클라리넷앙상블의 연주회로 중독치료센터 '빛이 임하는 집' 야외 자선 음악회를 깊은 산중 평창 공동체에서 열었다. 그가 음악회 준비에 제일 앞장섰다. 그는 고백했다. "공동체에 와서 하나님 말씀 듣고 술도 끊고, 적당한 노동도 하며, 몸도 좋아졌습니다." 나는 그로 인하여 더욱 확신한다. 중독도 치료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대자연 속에서 주의 사랑에 힘입어, 서로 믿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격려한다면.
    기고자 :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41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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