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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어텐션] 좋아해서 그랬다고?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발행일 : 2022.09.23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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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께끼'라는 게 있었다. 여자아이 치마를 들추며 "아이스께끼!"라고 외치는 그 장난질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1980년대에는 많은 아이가 아이스께끼를 했다. 특히 그건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타깃으로 저지르는 대표적인 장난 중 하나였다.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건 장난이 아니다. 분명한 성추행이다.

    그 시절에는 누구도 그걸 성추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은 울면서 선생이나 부모에게 일러바쳤다. 어른들은 웃어넘기며 말했다. "걔가 너를 좋아해서 그래." 남자아이들은 좋아해서 치마를 들췄다. 좋아해서 고무줄을 끊었다. 좋아해서 울렸다. 좋아해서 밀었다. 좋아해서 때렸다. 좋아해서. 그 한마디로 많은 잘못된 것들이 남자아이들에게 허락됐다.

    그 시절 사람들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좀 따라다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건 남자의 순정이라고 했다. 좋아하던 여자를 따라다니다 반강제로 결혼에 성공했다는 무용담은 어디에나 있었다. 연예인이 티브이에 나와 사실상 스토킹으로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우쭐대며 하던 시절이었다. 당대 인기를 누리던 개그맨 몇 명의 결혼은 납치혼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저따위로 생겨먹은 놈이 어쩜 저렇게 예쁜 여자랑 결혼하냐"고 감탄했다. 결론은 항상 같았다. 역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20대 여성 역무원이 오랫동안 스토킹을 한 전 직장 동료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말했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 서울교통공사를 들어가려면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취업 준비를 했을 청년일 것이다. 내 아들도 다음 주 입대하는데 아버지 마음으로 미뤄봤을 때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

    1969년생인 그는 나처럼 아이스께끼 시대의 유물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고무줄을 끊고 치마를 들추던 세대다. 그는 실언을 한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가해자와 가해자의 부모에게 감정을 이입했을 것이다. 사과문은 어이없을 정도로 공허했다. 잘못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자의 사과문이 으레 그렇듯이 말이다. 징계는 겨우 6개월 당원 자격 정지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심 남자의 순정에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아주 적절한 나라가 있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이다. 그 나라에는 여성을 납치해 강제 결혼하는 '알라 카추'라는 풍습이 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 발표에 따르면 매년 결혼의 50%가 알라 카추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몇 없는 러시아어 자료를 검색해 번역기를 돌려봤다. 의외로 한국서 이민을 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키르기스스탄은 아름다운 산맥 덕분에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린다. 요즘은 한류도 인기라고 한다. 여전히 아이스께끼의 순정을 품은 당신이 여생을 보낼 국가로는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혹시 이민 심사에 실패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50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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