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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영의 News English] 해외 입양인들이 母國을 고발한 이유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발행일 : 2022.09.20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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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덴마크에 입양된 루이스 광은 서류에 부산 길거리에서 발견된 고아 아기(orphan baby found on a street)로 적혀있다. 왜 생김새가 다르냐는 물음에 시달리던 그녀는 2016년 한국 입양기관에 연락을 해봤다. 얼마 후,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사무적으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matter-of-factly acknowledge) 답이 돌아왔다.

    부산 고아원 출신으로 돼 있지만, 입양 절차를 위해 꾸며진 것이라고(be made up for adoption procedure) 했다. 당시 입양기관에선 서울에 친부모(biological parents)가 있어 고아가 아니고, 부산에 가본 적도, 고아원에 들어간 일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능한 한 빨리 입양 보내려고(in a bid to get her adopted as fast as possible) 허위 사실을 만들어 넣었다는 것이다.

    1974년 입양된 베티나 마르쿠센은 양부모(adoptive parents)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생후 6개월도 안 돼 낯선 땅에 도착한 그녀는 영양실조(malnutrition)에 온몸이 물집과 종기투성이였다. 중환자실에 입원시켜(get her admitted to an intensive care unit) 3개월 만에 아이를 살려낸 양부모가 한국에 연락을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 그 아이가 죽으면 다른 아이를 보내주겠다"는 답이 왔다.

    1970년 노르웨이로 입양된 정경숙씨는 우여곡절 끝에(after much meandering) 1987년 한국의 언니를 만나 자신이 버려져 해외로 입양된(be abandoned and adopted abroad)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가 아파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시킨 후 다시 가보니 행방불명됐고(be missing), 아버지는 정씨를 찾아헤매다 "꼭 찾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4년 뒤 사망했다고(pass away) 했다. 덴마크 입양인 앤야 필어슨씨도 그동안 갖고 있던 입양 서류가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됐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입양 당시 사진은 자신이 아니라 이미 사망한 다른 여자아이였다는 걸 44세가 돼서야 알게 됐다.

    이런 사연을 가진 해외 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1970년~1990년대 국가와 입양기관들이 자행한 인권침해(violation of human rights)를 조사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의 공동대표인 변호사 피터 러(48)가 앞장섰다(take the lead). 한국 이름이 홍민인 러 대표도 '서울 출신 고아'로 돼 있지만, 그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고, 생모(biological mother)가 살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6·25전쟁 고아를 제외하고도 지난 60년 동안 해외로 보내진 입양아는 약 20만명에 달한다. AP통신은 한국 정부는 먹여 살려야 할 입(mouths to feed)을 줄이고, 미혼모(unwed mother) 문제 등을 해결할 수단으로 아이들을 '수출'했으며, '통관 서류'를 조작해 간편화했던(forge and simplify)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입양아가 아프거나 죽으면 다른 아이를 보내고 신분을 바꿔치기하기도(switch their identities)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어쩌면 언론에 보도됐던 입양인과 생부모·형제(birth parents·siblings) 40년 만의 해후, 50년 만의 상봉 중 일부는 혈육이 아니라 그저 동포와의 만남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고자 :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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