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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만 그렸던 아버지의 작품 속 이면 말하고 싶어"

    김성현 기자

    발행일 : 2022.09.20 / 사람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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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김오안 감독
    아버지 김창열 화백 삶 다큐로 제작

    "신기하게도 아버지께선 아무 반대 말씀이 없으셨어요. 인터뷰를 하거나 촬영을 부탁해도 항상 허락하셨죠."

    19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 화백에 대한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연출한 김오안(48) 감독이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화백의 차남. 파리고등미술학교와 파리고등음악원에서 사진과 작곡을 전공한 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 개인전만 20여 차례 열었고 재즈 색소폰도 능숙하게 연주하는 전방위 예술가다.

    이날 간담회에서 그는 간간이 통역의 도움을 받아가며 대부분 한국어로 답했다. "14~15세 무렵부터 한국을 꾸준하게 찾으면서 틈틈이 배웠다"고 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그에게 달려가 한자 이름을 물었더니 '오안(奧顔)'이라고 직접 써주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다큐에서 그는 연출·촬영·음악·편집·음향까지 '1인 5역'을 맡았다. 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그는 "한국에 계신 아버지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에 다큐 촬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5~2019년 한국과 프랑스를 넘나들면서 작업했다. 김 감독은 "다큐 촬영을 시작할 당시의 내 나이가 아버지가 물방울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신 시기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폴란드 크라쿠프 영화제(은상)와 한국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신진감독상)에서 수상했고, 28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큐 초반 화면을 가득히 채우는 건 김창열 화백의 강렬한 눈빛과 침묵이다. 다큐에서 김 감독도 "자라면서 가장 힘든 건 아버지의 침묵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릴 적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따스하고 푸근한 '산타클로스'보다는 수수께끼 투성이인 '스핑크스'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1971년 이후에는 물방울만 그렸던 아버지의 예술 세계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이렇게 질문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단순한 인내심이나 집요한 야망일까, 아니면 조금은 미친 걸까?"

    자연스럽게 다큐는 카메라를 사이에 놓고 벌어지는 부자(父子)의 대화가 된다. 김 화백이 파리에 정착한 뒤 태어난 감독에게는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에 다가가는 계기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16세에 월남했다. 평양 고교에서 반공주의 문구가 담긴 낙서를 하다가 적발되어 고초를 겪은 뒤였다. 다큐에서도 김 화백은 "국경을 넘으면서 난생처음으로 '신이 존재한다면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카메라에 잡힌 노화백의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물방울 이전에 눈물이 있었던 셈이다.

    6·25 전쟁 당시 목도했던 수많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화백은 "당시 난 비명을 지르거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화백의 아내이자 감독의 어머니인 김 마르틴 여사는 "죽지 않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평생 남편을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1969년 도불(渡佛)한 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마구간에서 무일푼으로 작업하다가 물방울을 발견한 건 유명한 일화다. 다큐에서 화백은 말한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꽃 그림, 여자 나체, 풍경을 그렸던 시대였을 것"이라고. 아들 김 감독은 "이번 다큐를 통해서 아버지가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과 전쟁으로 인한 충격을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면서 "아버지의 작품 이면에 있는 복합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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