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종이신문보기
英여왕 일반 조문 첫날
정철환 특파원 르포
지난 8일(현지 시각)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반 조문이 시작된 14일 밤, 빅 벤(Big Ben) 시계탑 옆에 있는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시작된 조문객 행렬이 강 건너 템스강의 명물인 런던 아이 대관람차 뒤편 주빌리 공원 너머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대기 줄은 템스강 변을 따라 람베스 다리를 지났고, 웨스트민스터홀 남쪽 빅토리아타워 가든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다시 10번 이상 꼬불꼬불 꺾인 뒤 큰길로 나와 웨스트민스터홀로 들어갔다. BBC는 "줄 길이가 무려 3마일(약 4.8㎞)에 이른다"고 했다. 서울로 치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시작된 줄이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동까지 이어진 셈이다.
이날 오후 5시 일반 조문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길어진 줄은 불과 1시간 만에 런던 아이까지 이어졌다. 뒤늦게 대열에 선 조문객들은 밤을 지새울 각오였다. 대부분이 코트와 목도리, 보온병 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간이 의자를 가져온 이들도 보였다. 약 4㎞ 지점인 웨스트민스터 다리 사자상 근처에서 만난 릴리언(31)씨는 "영국인들은 줄 서기로 유명한 사람들(a nation of queuing)"이라며 "여왕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내해야 한다"고 했다.
일반 조문은 19일 오전 6시 30분까지 4일간, 24시간 내내 계속된다. 영국 언론들은 "지금 줄에 서 있는 사람만도 수천명"이라며 "이런 추세면 당초 예상한 100만명 이상이 여왕을 조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문은 차분하고 엄숙하게 이뤄졌다. 웨스트민스터홀 앞에서 검문검색을 받은 조문객들은 4개 줄로 나뉘어 홀에 입장했다. 왕관과 함께 보라색 단 위에 놓인 여왕의 관 앞에서 좌우 2개 줄로 나뉘었다. 대부분 고개를 숙이거나 간단한 기도를 하며 예를 표했지만, 감정에 북받쳐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줄 뒤에 선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15일 새벽 조문을 마치고 나온 폴린(49)씨는 "7시간 반 정도 기다린 것 같다"며 "막판에는 너무 힘들어 (조문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웨스트민스터홀에 들어서 여왕의 관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조문객은 여성이 5분의 3 정도로 남성보다 많았다. 미국과 인도, 동남아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자신을 '탕'씨라고 소개한 홍콩인 관광객은 "오늘 귀국해야 했지만,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려고 일정을 미뤘다"며 "홍콩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했을 때 행복했다"고 했다.
여왕의 관은 전날 오후 버킹엄궁에서 장엄한 운구 행렬과 함께 웨스트민스터홀로 이동했다. 빗방울을 흩뿌리며 흐렸던 날씨는 운구 시간이 다가오자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개었다. 여왕의 관은 왕실 기마 포병대가 이끄는 포차 위에 실려 버킹엄궁을 출발했다. 왕실 근위대 100여 명이 호위했다. 군악대와 의장대가 행렬을 이끌고, 새 국왕 찰스 3세와 윌리엄 왕세자, 해리·앤드루 왕자, 앤 공주 등 왕실 가족이 여왕의 관을 뒤따랐다. 운구 행렬은 런던 시내 중심부를 따라 약 2㎞를 지나 오후 3시 웨스트민스터홀에 도착했다.
이날 찰스 3세와 윌리엄 왕세자, 앤 공주 등은 왕실 전통에 따라 군복을 입고 나왔지만, 해리·앤드루 왕자는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해리 왕자는 2020년 3월 아내 메건 마클의 왕실 내 차별 문제로 갈등을 겪다 왕실을 떠나면서, 앤드루 왕자는 지난 1월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각각 군 칭호를 박탈당해 군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의 장례식은 19일 오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國葬)으로 엄수된다. 영국 정부는 전 세계 약 500명의 국가 지도자와 왕실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로이터 통신은 "영국 정부가 북한에도 대사급 인물을 초청했다"고 전했다. 영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 대부분이 초청됐으나, 러시아·벨라루스·미얀마 등 3국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인권 탄압 등 문제로 인해 초청장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고자 : 정철환 특파원
본문자수 : 203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