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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23시 제주 서귀포 최근접
6일 8시 포항으로 빠져나갈듯
9시간동안 남해안·내륙 휩쓸어

예상보다 빨리 한반도로 다가오는 11호 태풍 '힌남노'는 6일 오전 중 제주에서 남해안을 거쳐 부산·포항 등 내륙을 휩쓴 뒤 동해상으로 빠져나가겠다고 기상청이 5일 예보했다. 제주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5일 오후 11시에서 포항을 스치며 나가는 6일 오전 8시까지가 최대 고비다. '마(魔)의 9시간'으로 불린다. 이 9시간 사이 초속 40m 이상 강풍에, 바닷물이 높아지는 만조(滿潮)가 맞물리면서 제주·남해안을 중심으로 아파트 5층 높이인 최대 12m 이상 물결이 일어 폭풍해일이 해안가를 덮칠 가능성이 크다.

힌남노는 5일 오전 북위 30도 선을 통과해 우리나라 쪽으로 본격 행보를 이어갔다. 5일 오후 8시 서귀포 남쪽 120㎞ 해상에서 시속 33㎞로 북상하면서 6일 오전 6시 부산 서남서쪽 50㎞까지 접근한 뒤 점점 동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이후 부산·울산을 관통하고 정오에 울릉도 북북동쪽 50㎞ 해상까지 나간 뒤 점점 세력이 약해져 7일 0시 일본 삿포로 북서쪽 380㎞ 해상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5일 오후 11시 기준, 힌남노 중심기압은 945hPa(헥토파스칼), 최대 풍속은 초속 45m로 예측됐다.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힘이 커 세력이 강한데, 힌남노는 '사라'(1959년·951.5hPa)를 넘어 63년 만에 최강 태풍으로 남을 게 확실시된다.

경남 남해안은 오전 6시, 부산 오전 7시, 포항 오전 8시에 태풍 중심권에 들 전망이다. 힌남노는 5일 밤 제주도에 접근하며 진행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보다 이른 시간에 한반도를 관통하고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5일 오전 10시만 해도 시속 24㎞로 나아가던 힌남노는 오후 4시가 되자 가속페달을 밟은 듯 33㎞까지 속도를 높였다.

풍속은 6일 오전 6시 초속 43m까지 낮아졌다가 6일 정오 40m로 더 낮아진 뒤 오후 6시에는 37m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그러나 초속 25~33m면 지붕이 날아가고, 33~44m면 기차가 탈선하는 수준이라 여전히 매우 위험하다.

해일 피해가 새로운 복병이다. 태풍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서 만조 시간대와 태풍 상륙 시간이 겹치게 됐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태풍 상륙 시간이 예측보다 2시간가량 앞당겨지며 만조로 바다 물결이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태풍 소용돌이가 크게 쳐 해안가 피해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2016년 10월 태풍 '차바' 영향으로 폭풍해일이 일면서 부산 마린시티가 극심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당시에도 태풍과 만조가 겹치며 높이 10m 이상 집채만 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해안가에 밀집한 여러 아파트를 강타했다. 주변 도로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고, 강풍과 파도에 쓰러진 가로수·가로등과 바닥에서 뜯긴 보도블록 수백 장이 거리에 흩어졌다. 마린시티 전체 면적 35만㎡ 중 16만㎡가 침수됐고, 차량 80여 대가 파손되는 등 큰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마린시티는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매미', 2010년 '뎬무', 2012년 '볼라벤' '산바' 등 태풍이 부산에 상륙할 때마다 침수돼 총 100억원 안팎 재산 피해를 입은 뒤 2012년 길이 780ｍ, 높이 5.1ｍ 마린시티 방파제 위에 높이 1.3ｍ 해안 방수벽까지 세웠다. 그러나 차바 때의 폭풍해일을 감당하지 못했다.

태풍은 일종의 '커다란 저기압'이다.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소용돌이가 더 커지고, 주변 공기를 흡입하는 힘도 강해 세력은 더 세진다. 이런 태풍이 해상을 지나면 주변 바다 수위는 올라가게 된다. 또 태풍에서 부는 강력한 바람이 파도 높이를 끌어올린다. 이런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폭풍해일'이 만들어진다. 이대로도 '물의 벽'은 이미 높이가 충분한데, 밀물인 '만조'까지 겹치면 아파트 5~6층 높이에 버금가는 수마(水魔)가 만들어져 해안가를 집어삼키게 된다.

힌남노는 남해안이 만조에 걸리는 6일 새벽 이 부근을 통과한다. 여수(오전 5시 5분), 거제(오전 4시 41분), 마산(오전 4시 48분), 부산(오전 4시 31분) 등 남해안 대부분 지역이 이날 새벽 만조를 겪는다. 기상청은 힌남노와 만조가 겹치면 남해안에 12m 이상 물결이 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폭풍해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지역에선 바닷가로부터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한 대피 장소로 미리 이동하는 게 좋다. 마산에선 2003년 '매미' 때 높이 4m 넘는 해일이 해안가를 덮치면서 바닷가에서 1㎞ 떨어진 지하 노래방에 있던 사람들이 숨진 사건도 있었다. 해일은 삽시간에 해안가를 덮치기 때문에 높은 파도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했을 땐 이미 대피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

특히 태풍의 '위험반원(태풍의 오른쪽)'에 드는 부산·울산 등에선 강풍과 해일 피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가항반원'(태풍의 왼쪽)에 드는 지역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기상청 측은 "전국이 폭풍반경(바람이 초속 25m 이상으로 부는 구역) 또는 강풍반경(바람이 초속 15~24m로 부는 구역)에 속하기 때문에 태풍의 위험·가항반원과 무관하게 한반도 전역이 모두 위험하다"고 했다.

힌남노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자리한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태풍의 저기압성 회전을 강화해주면서, 북위 30도 선을 넘고도 세력이 약화하지 않고 오히려 발달했다. 제주도와의 거리가 150㎞ 부근까지 가까워진 5일 오후 8시까지도 힌남노는 상하층이 분리되지 않고 태풍으로서 단단한 구조를 유지했다. 태풍의 폭풍·강풍반경이 한반도를 빠져나갈 때까지 꽤 넓게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집중호우 피해도 주의해야 한다. 6일은 전국이 태풍 영향권에 들기 때문에, 지난 8월 시간당 최대 141.5㎜ 집중호우가 내려 도심 곳곳이 침수됐던 수도권 피해 때처럼 도시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비가 단시간에 내릴 수 있다. 기상청은 5~6일 전국에 100~300㎜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는데, 중부지방 북부지역을 제외하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200㎜ 이상 비가 내리겠다. 기상청은 비가 가장 강하게 쏟아지는 시점을 '6일 오전까지'로 예상했다.

기상청은 "힌남노가 북진하면서 중심 위치가 좌우로 50㎞ 이상 변동하고 있다"면서 "특정 지역을 상륙 지점으로 상정하지 말고 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래픽] 태풍 '힌남노' 예상진로 기고자 :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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