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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청년들 고민 편지에 은퇴자·주부 등 중장년층 '답장 봉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조금 늦게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남들 다 취업하는데 1년 더 공부를 하는 게 맞는지, 빨리 졸업해 돈 버는 게 나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명감도 부족한데 제가 이 일을 해도 될까요?"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 사무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정권(70)씨가 손에 갈색 편지지 두 장을 든 채 누군가의 이런 고민을 한참 읽고 있었다. 이 편지는 김씨가 얼굴도 모르는 충청도의 한 20대가 보낸 것이다. 김씨는 편지를 다 읽은 뒤 허공을 바라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뭔가 떠오른 듯 노란색 편지지에 손으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쓰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악필인 점 양해 바랍니다. △△님,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대로 해보는 게 어떨까요?"라는 문장이었다.

이날 이 사무실에는 김씨 같은 50~70대 안팎의 중·장년층 14명이 책상마다 앉아 1시간 넘게 손편지를 썼다. 볼펜이 편지지 위를 오가는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내내 진지한 분위기였다. 이들은 이날 비영리 사단법인 '온기'와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의 '온기 우편함' 활동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전국 1인 가구 청년들에게 취업·연애·가정사 등 고민을 담은 익명의 편지를 받아, 중·장년층이 이를 읽고 답장을 보내주는 것이다. 20대와 중·장년층이 세대를 넘어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차원에서 지난 8월 시작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한두 줄짜리 댓글이나 이모티콘 같은 그림 하나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라, '어른'들의 손편지를 받은 청년들은 "더 큰 위로가 된다"며 호응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손편지 쓰기에 나선 중·장년층은 기업 은퇴자를 포함해 일반 주부, 현직 간호사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청년들의 편지를 읽으며 "나라면 이런 고민에 진지하게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편지에 답장을 썼다. "저도 20대에 내 인생이 너무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아 누구에게도 나를 말하지 못했어요" "도전해보지 않은 것을 포기했더니 후회가 찾아오더군요" 등 자신의 청년 시절이나 삶의 경험을 솔직히 소개했다. 답장을 쓰며 "나도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황선영(62)씨는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인천 청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데, 이날 우연히 간호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만났다고 한다. 황씨는 "두 아이가 모두 어느덧 30대 초·중반이 돼 자식 같은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면서 "내가 어렸을 때보다 훨씬 진지하고 성실하게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현재를 돌아보게 됐고 지금 내 현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문수진(52)씨는 "루푸스병(만성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을 갖고 있는 친구의 사연을 받았는데 '술 하나도 못 먹어 친구들 사이에서 눈치가 보인다'는 내용이 있었다"며 "나도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어 공감이 많이 됐는데 살면서 익혀온 건강관리 방법 등을 써줬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영희(53)씨는 "연애 상대와 정치적 가치관 차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진 다른 장점은 무엇인가요?'같이 질문을 많이 던졌다.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이들이 쓴 답장은 추석 직전 청년들에게 전달된다. 한번 답장 쓰기에 참여한 중·장년들이 또 "청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는 "10~11월에도 계속 이런 행사를 여는 등 더 많은 청년과 시니어가 진심 어린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 중·장년층이 청년들에게 전한 말들 기고자 :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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