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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머니무브로 예금 늘어 손질 필요＂… 정치권·금융당국 공감대

서울에 사는 70대 은퇴자 양모씨는 지난달 9000만원을 저축은행 정기예금에 넣으면서 본인과 아내 명의로 4500만원씩 나눠서 가입했다. 만약 저축은행이 문을 닫을 경우 예금보험공사에서 보장해주는 예금자 보호 한도가 1인당 5000만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씨는 "5000만원 이상 예금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가족 명의 등으로 계좌를 또 만들어야 하니 번거롭다"면서 "예금자 보호 한도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고 했다.

21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금리 상승으로 증시가 식고 은행으로 돈이 몰리면서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논의가 나오고, 금융 당국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김태현 당시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한도를 높이는 방향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소득 3배로 증가했는데 한도는 그대로

예금자 보호 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해 고객이 맡긴 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당시 주목받았다.

하지만 지난 2001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된 이후 21년째 묶여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1년 1만1561달러에서 지난해 3만4758달러로 3배로 증가하면서 개인 금융 자산이 크게 늘어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가계 및 비금융 기업의 금융 자산이 늘어나면서 예금자 보호를 받는 비율은 1999년 53%에서 지난해 32%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우리나라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주요국보다 크게 낮은 편이다. 일본은 1000만엔(약 9700만원), 독일은 10만유로(약 1억3560만원)다. 미국의 경우는 6배 이상 많은 25만달러(약 3억3860만원)나 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예금자 보호 한도를 대폭 높였지만, 우리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금리 상승으로 예금 급증

올 들어 금리 인상이 가팔라지자 증시에서 빠져나온 자금들이 은행권으로 몰리고 있어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이기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정기 예·적금은 지난 25일 기준 718조8970억원으로, 올 들어서만 67조6442억원 증가했다.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예·적금도 상반기에만 14조229억원 증가해 6월 말 기준으로 모두 116조4664억원에 달한다.

예금이 급증하고 있지만 예금자 보호 한도가 늘어나지 않아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1인당 5000만원 한도를 맞추기 위해 가족 등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가족, 친지 명의의 위임장을 여러 장 써와서 5000만원씩 예금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면서 "번거롭기도 하고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예금보험료 인상 부담이 쟁점

금융위원회는 예금보험공사와 협의해 내년 8월까지 예금자 보호 제도의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회에는 한도를 1억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

각 금융회사가 나눠 내는 예금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한도 인상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료는 예금액 대비로 은행 0.08%, 금융투자회사·보험사 0.15%, 저축은행 0.4% 식으로 업권별로 차등화해서 거두고 있는데, 예금보험료를 인상할 때 업권별로 얼마씩 추가로 낼 것인지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 비용은 결국 대출 금리를 높이거나 예금 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예금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금보험료는 지난해 2조347억원에 달했고, 누적으로는 1996년 예금보험공사 설립 이후 26조9122억원에 달한다. 금융회사들이 나눠서 낸 돈이지만, 결국은 예금자들이 낸 돈이라고 볼 수 있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 등 급격하게 커진 전자 결제 사업자의 선불식 충전금도 예금자 보호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래픽] 국가별 예금자보호한도 / 예금자보호제도 현황 / 금융업권별 예금보험료율 기고자 :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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