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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지혜와 우리 문화 오롯이 담긴 전통주 산업 부흥… 지역경제 활성화, 한국 대표 축제로 육성＂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 자연 발효시키면 탁주(濁酒·막걸리)가 된다. 이것을 가마솥에 고아 증류시켜 얻는 것이 소주(燒酎)다. 이 두 가지가 전통주의 근본이다. 여기에다 각종 한약제와 꽃을 우려낸 술을 향약주(香藥酒)라고 부른다. 뛰어난 약리성과 은은한 향이 배인 전통주는 서양의 양조기술과 색다른 독보적인 우리의 양조기술인 것이다. 우리 전통주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먼저 삼한시대와 고구려 제천 의식에 '주야음주가무(晝夜飮酒歌舞)를 하였다'는 기록에 엿볼 수 있다. '일잔 신라주 준신 공역소(一盞 新羅酒 浚晨 恐易銷) 한 잔의 신라술의 취기가 새벽 바람에 사라질까 두렵구나' 해동역사와 지붕유설에 당나라 시인 이상은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당대의 문인들 사이에서 신라술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자연의 향·빛깔 담은 경북의 전통 명주

경북의 전통주는 계절마다 자연의 빛깔과 향을 담았다. 봄 술에는 진달래꽃을 띄웠고, 여름 술에는 연꽃으로 은은한 향을 더했다. 가을에는 국화나 유자로 향을 첨가했고, 겨울엔 죽엽과 매화로 향을 우려냈다.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경북 특유의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문화엔 술이 빠질 수가 없다. 경북의 다양한 전통주는 유림 가문이 많은 안동지역 향토 고조리서인 '수운잡방(需雲雜方·보물 2134호)'에 잘 나타나 있다. 현존하는 조리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 책에는 146종 음식 외에도 51종의 술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온주법(蘊酒法)'과 '음식디미방', '음식절조(飮食節造)' 등 경북 북부지역의 고서적에서도 술 빚는 방법이 수십 가지씩 기술돼 있다. 이 4종의 책에만 소개된 전통주를 모두 합치면 무려 203종류. 고을마다 전통명주, 가문마다 가양주(家釀酒)를 빚은 셈이다.

경북의 전통주 중에서도 그래도 명주를 꼽으라면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단 한 모금만 마셔도 '어허흠' 헛기침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꼿꼿한 선비의 기개가 혀끝에 맴도는 '안동소주'는 목안 전체가 후끈할 정도로 45도의 독한 맛이 특징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만찬주로 지정되기도 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경주 교동법주'는 만석꾼으로 유명한 경주 최씨 가문의 가양주다. 빚는 시기와 방법이 딱딱 정해져 법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궁중 술이었는데 빚던 사람이 경주로 내려와서도 빚어 이후 조선의 국주(國酒)라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에는 국화(菊花)로 빚은 '황금주'도 빼놓을 수 없는 경북의 전통주다. 구기자·백출·황정 등 기운을 북돋는 데 사용되는 다섯 가지 한약재로 빚은 '영주 오정주'와 오가피와 솔잎, 계피 등으로 빚은 '봉화 선주'는 대표적인 한방 약용주다.

황희 정승 집안의 가양주로 신선이 즐겼다던 술 '문경 호산춘'도 오래 전부터 소문난 전통주다. 역사성과 전통성을 인정받아 1991년 경북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됐다. 약초에 꿀을 첨가한 '영양 초하주'는 독주(35도)이지만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지정주와 2008년 서울 아셈(ASEM) 정상회담 공식 만찬주로 명성을 알렸다. 연꽃과 연근 등을 넣고 100일 이상 발효시킨 '칠곡 설련주'는 술잔에 따를 때 연꽃 향이 은은하게 퍼져 '향으로 먼저 마신다'는 말로 유명하다. 부드러우면서도 뒷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솔잎의 은은한 향취와 입에 짝 들러붙는 감미가 특징인 '선산 약주'는 맛이 뛰어나 방랑시인 김삿갓도 끝없이 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찹쌀과 쑥을 첨가해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시켜 감칠맛과 특별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김천 과하주'도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의 명주다.

◇경북 전통주를 세계로…안동서 경북 술문화 축제 첫선

공장에서 자동으로 찍어 내는 대중 주류에다 수입주류의 기세에 밀려 뒷전에 밀려난 막걸리가 최근 '국민주'로 떠오르면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주가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음에도 아직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개발만 해놓고 제대로 된 홍보를 못해 그냥 주저앉은 경우도 허다하다. 전통주에 얽힌 규제는 방송광고나 홈쇼핑을 통해 팔고 싶어도 팔수도 없는 처지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육성 지원책은 아직도 밑바닥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와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0년~2014년 5년간 20조 2114억에 이르던 국내 주류산업 전체 총 생산량은 2015년~2019년 21조 8024억원(7.9%)으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통주는 2236억에서 2193억(1.9%)으로 감소했다. 경북지역 전통주의 경우 449억원에서 425억(5.4%)으로 줄었다. 이 기간 수입주류는 3조 1267억원에서 4조 3342억원(38.6%)나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술 생산량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전통주만큼은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경북도는 이러한 실정을 감안해 특색 있는 전통주 문화를 독특한 관광 테마로 활용하는 '경북 술문화 축제'를 2~3일 안동 대표 관광지인 월영교 일원에서 개최한다.

올해 처음 열리는 술문화 축제는 '경북의 술, 문화를 담아 세계로!'라는 주제로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등에 등장하는 경북지역의 전통주 문화를 새로운 관광콘텐츠로 승화시킨 행사다. 이를 통해 경북도는 내·외국인들에게 경북의 전통주를 홍보하고 관광객을 유치해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복안이다.

개막식은 2일 오후 5시 월영교 야외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도립국악단과 독도사랑스포츠공연단의 식전 축하 공연에 이어 개막과 함께 내방가사전승보존회 및 경북 사투리 아지매송 초청 공연, 취중진담 가요제 등이 이어진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도내 23개 시장·군수가 참여해 축제에 흥을 보탠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는 볼거리·먹거리와 즐길거리·살거리를 제공한다. 축제에서는 전통주 명인과 함께하는 토크쇼, 종가의 가양주 및 상차림 전시, 전통주 술병 및 술잔 전시, 요리연구가 박찬일 셰프의 '월영교 달빛 한잔' 등이 진행된다. 또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청송 구암 막걸리 및 최우수상을 받은 안동 소주를 비롯해 도내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과실주, 증류주 등 각양각색의 명품 전통주 140여종이 전시·체험·판매된다. 행사 기간 월영교 일원엔 백두대간 인문캠프, 경북여행 리포트단 팸투어, 안동 호반나들이길 걷기, 관광두레 주민사업체 상품 체험 부스 등이 마련돼 재미를 더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북의 술에는 선조들의 오랜 지혜와 전통, 우리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어 보존·산업화할 가치는 충분하다"며 "경북의 우수한 전통주를 소재로 문화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전통주 산업을 부흥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술문화 축제를 한국의 대표 축제로 육성시키겠다"고 말했다. 기고자 : 안동=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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