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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날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어느새 하늘은 높아졌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도 들려온다. 스산한 기운이 감돌면 우린 저마다 감상에 빠지곤 한다. 가을에는 유독 떠오르는 노래가 많다.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면을 채우고 남을 판이다. 한국 대중가요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가을 노래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고복수가 불러 1937년 1월에 발매한 '짝사랑'(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이다.

'짝사랑'이란 제목은 낯설어도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첫 소절을 들으면 "아, 그 노래!"할 것이다. 보통 2절까지 알려졌으나 원래 3절이었던 이 노래는 짝사랑의 아픔을 가을의 쓸쓸한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했는데 사용한 어휘들이 영롱하다. 1절의 '으악새'는 가을의 대표적인 풀인 억새라는 설과 왜가리라는 설이 있다. 2절의 '뜸북새'와 조응하기 때문에 으악새가 새라는 것인데, 3절에 '단풍잎'이 나오므로 으악새를 풀로 보는 것이 틀렸다고만 하기 어렵다. 어느 경우든지 빼어난 서정성의 구현이다.

'지나친 그 세월' '잃어진 그 사랑' '무너진 젊은 날'이란 표현도 짝사랑을 생각하고 들으면 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면서도 그 짝사랑이 비참하지만은 않은 것은 쓸쓸한 마음을 아름다운 자연에 투영하여 묘사했기 때문이다. 1절에서 사용한 '여울' '아롱 젖다' '이지러지다' '조각달'이란 어휘 자체뿐 아니라 그것들이 만나 만들어낸 문장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 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라는 2절은 들국화의 모습을 통해 가을의 고독함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짝사랑은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난파선과 같다. 이러한 마음을 3절에서는 "궁창(穹蒼)을 헤매는 서리 맞은 짝사랑, 안개도 후유후유 한숨집니다"라고 풀어낸다. 짝사랑으로 애태우는 심정을 이토록 절묘하게 자연과 엮어낼 수 있을까 싶다.

가을이 깊어지면 우린 또 얼마나 쓸쓸해질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리워할까? 그렇더라도 한영애가 부른 '가을 시선'의 노랫말처럼, 어느 투명한 가을날 오후에 모든 것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기로 하자. 외로운 만큼 깊어지기도 좋은 계절이 아닌가 말이다. 가을은 그러한 계절이다. 그러니 상대는 대답 없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더라도 우리는 "서로 안부를 묻고" "고맙다 인사를 하"기로 하자. 기고자 :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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