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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피해자, 국가가 손해배상하라"

    양은경 기자 유종헌 기자

    발행일 : 2022.08.31 / 종합 A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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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7년만에 판례 뒤집어
    피해자·유족 등 71명 승소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포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금됐거나 유죄판결을 받아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이지만 국가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했던 2015년 대법원 판결이 7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유모씨 등 71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유씨 등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최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거나 구속된 사람들이다. 상당수가 재심을 청구해 무죄가 됐고 최대 1억2600만원의 형사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2013년 정부를 상대로 112억여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 수사와 공소 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됐다"며 "긴급조치 9호의 적용·집행으로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긴급조치 피해자 모임 '긴급조치 사람들'에 따르면, 긴급조치 9호 피해자는 1000여 명이며 이 가운데 170여 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대법 판결은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5월 선포했다.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하는 행위와 일체의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이런 내용을 방송하거나 보도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될 수 있었고, 1년 이상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었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하고 영장 없는 체포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이미 위헌·무효라고 판단한 상태다.

    대법원 전합은 이날 민사 손해배상 판결에서도 "긴급조치 9호 관련 국가 작용과 공무원들의 직무 집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反)하며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며 "긴급조치 9호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 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 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했다.

    앞서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는 판결과 결정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잇따라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같은 해 4월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 것으로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도 위반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형사 보상을 받는 길이 열렸다. 형사 보상은 피의자나 피고인으로 구금됐다가 불기소 처분,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구금된 일수에 따라 일정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수사기관의 고의·과실이 없어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의·과실을 전제로 하는 국가배상과는 다르다.

    하지만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진 않았다. 대법원은 2015년 "긴급조치 9호 발령은 위헌·무효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는 있어도,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행위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하급심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받은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헌적 긴급조치 발령과 그에 따른 국가 작용으로 발생하는 개별 공무원의 행위는 불법"이라며 "정부는 2억4000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결국 대법원도 이번에 7년 만에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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