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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맛 세상] 면치기 논란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발행일 : 2022.08.30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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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면치기 논란'의 시작은 배우 겸 감독 이정재씨가 출연한 방송이었다. 지난 13일 방송한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씨와 만난 이정재씨는 칼비빔국수를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에 다 넣지 않고 적당량을 끊어 먹었다. 이영자씨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정재씨를 쳐다봤다. 스튜디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출연자들도 "되게 조용히 드신다" "그걸 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영자씨는 "국수 (먹는데) 소리를 안 내요? 소리가 나야죠"라며 "후루룩 후루룩" 소리와 함께 화려한 면치기 기술을 선보였다. 다른 출연자들은 "저렇게 먹어야지" 하며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이정재씨는 신기한 듯 젓가락질을 멈추고 이영자씨의 면치기를 지켜봤다.

    방영 뒤 소셜네트워크(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해당 방송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특정 식사법이 옳다고 강요하는 듯한 태도가 반감을 샀다. 한때 유행하던 '면스플레인(평양냉면+explain)'이 비판받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국물이나 양념이 다른 사람에게 튈 수 있어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면치기가 마치 제대로 먹는 방법인 양 나가는 게 싫다" "후루룩 소리가 거슬린다" "먹방과 예능 프로그램이 잘못된 예절을 부추겼다" "원래 면을 먹을 때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 아닌가" 등 면치기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다.

    면치기는 많은 양의 국수를 끊지 않고 한 번에 흡입하듯 먹거나, 연속적으로 입에 밀어 넣으며 먹는 방식을 말한다. TV, 유튜브 먹방(먹는 방송)에 자주 나오면서 국수를 제대로 먹는 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얼마 전 주말 아들에게 파스타를 만들어 줬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국수는 역시 면치기가 제맛이지" 하며 소스를 튀겨가며 스파게티 면을 쪼르륵 입안으로 빨아들였다.

    음식을 먹을 때 소리 내지 않아야 예의라고 배운 것 같은데, 워낙 면치기가 유행이다 보니 과연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심지어 고종 황제도 "냉면만큼은 소리 내며 먹어야 더 맛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고종을 가까이서 모신 김명길 대령상궁이 쓴 '낙선재 주변'에 나오는 내용이다. 고종은 냉면 사랑이 유난했다. 궁에서 공식 행사가 있을 때면 반드시 냉면을 올리라고 명했을 정도다.

    한국 전통 식사 예법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에게 "옛날에는 국수를 소리 내며 먹어도 괜찮았느냐"고 물었다. 한 이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서민들이야 장터에서 후루룩거리며 먹었을 수도 있지만, 양반들이 어디 그랬나요? 설사 고종께서 냉면만큼은 소리 내며 먹어야 맛있다고 하신 게 맞더라도, 방점은 '만큼은'에 찍혀야겠죠. 조용히 먹는 게 원칙이고,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소리 내 먹어도 된다는 예외가 인정된다는 뜻으로요."

    면치기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굳이 따지자면 생일상에 국수를 올렸던 중국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다란 면발처럼 오래 살라며 올린 국수를 끊어 먹는 건 불경하게 여겨졌지만, 이때에도 이로 끊어 먹지 말라는 것이지 소리 내며 먹으라는 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국수 먹을 때 소리를 내도 된다. 시끄럽게 먹어야 맛있다는 칭찬으로 여겨질 정도다. 엄격한 수행 생활을 하는 불교 승려들은 한 달에 한 번 국수로 공양한다. 이런 날에는 평소와 달리 자유롭게 식사하면서 소리 내 국수를 먹었다. 이것이 민가에 전해지면서 우동, 소바 등 국수는 소리 내 먹어도 괜찮게 됐다. 특히 소바는 이렇게 먹어야 공기가 함께 입안에 들어와 메밀 향을 더 풍성하게 음미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서도 요즘은 면치기를 싫어하는 이가 늘고 있다. 면치기가 방송에서 과장됐다는 것. 요즘 한국 TV나 유튜브처럼, 과거 일본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이 음식 프로를 보며 군침을 흘리도록 청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면치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면치기 반대편에 있는 면 끊기는 괜찮을까. 한 이사장은 "장수(長壽)하라는 뜻이 담긴 국수를 끊어 먹는 건 옳지 않을 듯싶다"고 했다. "한입에 편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알맞은 길이로 면을 준비할 때부터 신경 쓰고, 그렇게 준비해 조리한 면을 후루룩 쩝쩝거리거나 끊지 않고 조용하고 우아하게 먹는 게 진짜 우리 식사 예법이겠죠."
    기고자 :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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