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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잘 낳게 생겼네? 어르신, 큰일납니다

    김지원 기자 신지인 기자

    발행일 : 2022.08.30 / 사회 A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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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장하네" "치마 왜 안 입었나"
    일부 고령층, 성희롱성 발언하곤
    "평생 이리 살아… 뭐가 문제냐"

    올해 초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노인 6명이 공공 일자리 사업으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시작했다. 남성 4명, 여성 2명이 한 조가 되었는데, 남성 노인들이 일을 하다가 지나가는 주민들을 보며 "애 잘 낳게 생겼네" "예쁘장하네" 등 외모 품평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불쾌감을 느낀 여성 두 명은 결국 일을 그만뒀다. 이들의 음담패설을 들은 주민들 민원도 들어왔다. 하지만 한 남성 노인은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왜 다들 과민 반응이냐"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수년간 유명 인사들의 성폭력과 막말 등 성 추문이 잇따른 데다, 직장이나 학교 등 곳곳에서 여성들에 대한 성추행·성희롱 사건이 연이어 사회문제가 되어왔다. 그 결과 사회 전반에서 이른바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청년이나 중년층 안팎에서는 경각심이 높아져 있는 반면, 고령층의 경우 "나 때는 안 그랬다" 식으로 과거의 잘못된 관습이나 관행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어, 곳곳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형사사건으로도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북 영천시에서 12년째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한 백모(61)씨는 최근 자신이 돌보는 70대 노인으로부터 "엉덩이가 커서 앉아만 있냐" "오늘은 치마 왜 안 입었냐"라는 등의 신체나 옷차림과 관련한 불쾌한 말을 수시로 듣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어르신이 나이가 많으셔서 인지 능력이 떨어져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희롱 발언이 잇따르자 경찰 고소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 노인은 "예뻐서 칭찬한 건데 왜 그러느냐"며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음담패설 등의 성희롱을 넘어 과도한 신체 접촉이 성추행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지난 6월 부산광역시 북구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70대 노인이 초등학생 여아의 몸을 더듬고 뽀뽀하는 등 강제 추행을 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앞서 2020년 12월 충남 천안에서도 80대 노인이 열 살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어깨와 엉덩이를 두드리고 귀를 만져 아이 부모가 성추행으로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노인은 "아이가 기특해서 잘 가라는 의미로 토닥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성추행을 포함한 강제 추행으로 입건된 65세 이상 노인은 고령화와 맞물려 2011년 608명에서 2021년 1468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고령자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이 곳곳에서 사회문제화될 조짐이 보이자, 노인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자체도 잇따르고 있다. 대구 달성군의 노인복지관에선 지난 2020년부터 1년에 2회 정도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충남 천안시도 올해 5월부터 전문가들이 직접 관내 경로당을 돌며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을 한다. 경기도도 작년부터 노인종합상담센터가 노인 대상 성교육 사업을 전담하며 31개 시군의 노인복지관·경로당 등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는 "타인의 신체에 함부로 손을 대는 행동은 잘못되었다는 것,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는 과거의 성 역할 편견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등을 가르친다"고 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성교육을 수강하고 있는 이영생(76)씨는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손자가 집에 오면 '얼마나 자랐나' 하고 성기를 만지기도 했고, 손자·손녀들에게 뽀뽀해달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며 "수업을 들으니 그런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겠더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노인들의 잘못된 성 인식 문제가 곳곳에서 갈등 요인이 되는 만큼, '나이가 많으니까'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등의 이유로 안이하게 보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회성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노인 대상 성교육 표준안을 마련하고, 광역시도가 매개체가 되어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 노인의 강제 추행 사건
    기고자 : 김지원 기자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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